하상지何尙之가 단양윤丹陽尹이 되었을 때注+① ≪송서宋書≫ 〈하상지열전何尙之列傳〉에 말하였다. “하상지는 자字가 언덕彦德으로, 여강廬江의 첨灊 사람이다. 증조부 하준何準은 〈그 뜻을〉 고상히 지켜 벼슬하지 않고, 조부 하회何恢는 남강태수南康太守를 역임하며, 부친 하숙도何叔度는 공손하고 삼가며 덕행과 학업이 있었다. 하상지는 평소에 문장을 좋아하고 차분히 술 마시면서 담론했는데, 〈남조南朝〉 송宋태조太祖에게 크게 인정받고 관직이 시중侍中과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렀다.”남곽南郭 밖에 현학관玄學館을 다시 설치하니,
당대의 명사들이 도道를 흠모하여 찾아왔다. 왕천옥王倩玉(왕구王球)이注+② ≪송서宋書≫ 〈왕구열전王球列傳〉에 말하였다. “왕구는 자字가 천옥倩玉으로, 낭야瑯琊임기臨沂 사람이다. 부친 왕밀王謐은 사도司徒를 역임하였다. 왕구는 평소 도도하고 고귀한 체 하여 사람들과 교유하지 않았다. 강하왕江夏王왕의공王義恭이 한번은 하상지에게 ‘현재는 인재가 부족하니 백관들이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해야 하는데, 왕구는 오만방자하니 아마 국법으로 바로잡아야 할 듯하오.’ 하니, 하상지가 ‘왕구에게는 소박하고 고상한 지조가 있으니 문안文案(공문서)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왕구는〉 관직이 태자첨사太子詹事․대부大夫․상서복야尙書僕射에 이르렀다.” 일찍이 이 일에 대해 칭찬하였다.
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구나.”注+③ 서하西河는 〈공자孔子의 제자〉 자하子夏가 거처하던 곳이다.
역주
역주1何尙之가……설치하니 :
南朝 宋 文帝 元嘉 13년(436)에 하상지에게 玄學館을 개설하여 생도를 교육하게 했는데, 이때의 ‘玄學’은 佛學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현학과 불학이 서로 융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현학’이 ‘불학’을 지칭하기도 하고 ‘老莊의 현학’을 가리키기도 하였다.(盧盛江, ≪魏晉玄學與中國文學≫ 2쪽, 百花洲文藝出版社, 2002)
역주2西河의 기풍 :
孔子의 제자 子夏가 만년에 서하에서 강학하면서 魏나라 文侯의 스승이 되자, 주변에 유학이 크게 번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