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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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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玄明 甚有吏能하니 歷建康 山陰令한대 政常爲天下第一注+① 南史曰 “劉玄明, 臨淮人, 官至司農卿.”이라 傅翽 代爲山陰하니 問玄明曰
願以舊政으로 告新令尹하소서하니
玄明 答曰
我有奇術하니 卿家譜所不載注+② 南史曰 “傅翽, 北地靈州人. 祖僧祐, 山陰令, 父琰爲建康․山陰令, 並著能名, 二縣謂之傅聖. 翽位至驃騎諮議.” 孔平仲續世說曰 “諸傅有理縣譜, 子孫相傳, 不以示人.”리이다 臨别 當以相示리이다하다
既而言
作縣令하여는 唯日食一升飯하고 而不飲酒 此第一策也니이다하다


6-24【유현명劉玄明은 관리로서 매우 유능하였다. 건강령建康令산음령山陰令을 지냈는데 치적治積이 항상 천하제일이었다.注+① ≪남사南史≫ 〈순리전循吏傳〉에 “유현명劉玄明임회臨淮 사람이고, 관직은 사농경司農卿에 이르렀다.” 하였다. 후에 부홰傅翽가 산음령의 후임이 되자 유현명에게 물었다.
“전임 수령의 정사의 비법을 신임 수령인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유현명이 대답하였다.
“나는 특별한 비법을 지녔는데 경의 가보家譜에는 안 실려 있을 겁니다.注+② ≪남사南史≫ 〈순리전循吏傳〉에 말하였다. “부홰傅翽북지北地 영주靈州 사람이다. 조부 부승우傅僧祐산음령山陰令이었고, 부친 부염傅琰건강령建康令․산음령을 지냈는데 모두 유능하다는 명성이 자자하여 두 에서 그들을 ‘부성傅聖’이라고 불렀다. 부홰는 지위가 표기자의驃騎諮議에 이르렀다.”
정사政事〉에 “부씨傅氏 문중에는 ≪이현보理縣譜≫가 있었는데, 자손끼리 서로 전하고 남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하였다.
작별할 때가 되면 당연히 알려드리겠소.”
얼마 있다 말하였다.
“현령일 때는 오로지 술을 마시지 않는 것, 이것이 최고의 비법입니다.”


역주
역주1 孔平仲 : ?~?. 字는 義甫인데 毅父(의보)라고도 한다. 新喻(江西省 新餘市) 사람이다. 孔子의 47대손으로, 형 孔文仲․孔武仲과 함께 文名이 높아 ‘三孔’으로 병칭되었다. 治平 2년(1065)에 進士가 되었고 이후 教授, 秘書丞, 集賢殿 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저술로 ≪續世說≫, ≪孔氏談苑≫, ≪珩璜新論≫, ≪釋稗≫ 등이 있다.
역주2 續世說 : 北宋의 孔平仲이 편찬한 12권의 筆記小說集이다. 南北朝시대에서 唐나라와 五代까지의 朝野의 일화들을 기록하였는데, 体例는 劉義慶의 ≪世說新語≫를 모방하였다. 주로 李延壽의 ≪南北史≫, 劉昫의 ≪舊唐書≫, 薛居正의 ≪舊五代史≫에서 내용을 수집하였고 이전 시대의 필기소설에서도 수집하였다.
역주3 하루……먹고 : 저본에는 ‘一升’으로 되어 있으나, 1승은 오늘날의 4․5홉이며 中人이 먹는 양이다.(≪世說箋本≫) 여기서는 적게 먹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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