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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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褚公 於章安令 遷太尉記室參軍注+① 按庾亮啓參佐名, 裒時直爲參軍, 不掌記室也.한대 名字已顯이나 而位微하여 人未多識이라 公東出 乘估客船하고 送故吏數人이라 投錢塘亭住注+② 錢塘縣記曰 “縣近海, 爲潮漂沒, 縣諸豪姓, 斂錢雇人, 輦土爲塘. 因以爲名也.”한대
爾時沈充 爲縣令이러니 當送客過浙江이라 客出하니 亭吏 驅公移牛屋下 潮水至 沈令 起彷徨하다가
牛屋下 是何物人고하니
吏云
昨有一傖父 來寄亭中한대 有尊貴客하여 權移之니이다하다
令有酒色하여 因遙問
傖父 欲食䴵不 姓何等 可共語라하니
因擧手答曰
河南 褚季野로이다하다
遠近久承公名하니 於是大遽하나 不敢移公하고 便於牛屋下 脩刺詣公이라 更宰殺爲饌하여 具於公前하고 鞭撻亭吏하여 欲以謝慚이라 與之酌宴 言色無異하니 狀如不覺이라 送公至界
【頭註】
王云 “非王敦客也.”
吳人一作吳興


12-22 저공褚公(저부褚裒)이 장안현령章安縣令으로 있다가 태위太尉(유량庾亮)의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전임되었는데,注+유량庾亮의 〈계참좌명啓參佐名〉을 살펴보면, 저부褚裒는 당시에 단지 참군參軍이 되었고 기실記室을 담당하지 않았다. 이름은 이미 널리 드러났지만 지위가 낮아서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저공이 〈부임지로 가기 위해〉 동쪽으로 떠날 때 〈관선官船을 타지 않고〉 상선商船을 타고 하는 아전이 몇 명뿐이었다. 〈저공은〉 전당정錢塘亭에 투숙하였다.注+② ≪전당현기錢塘縣記≫에 말하였다 “전당현은 바다에 가까워 조수에 의해 침수되었는데, 전당현의 여러 유력 가문에서 돈을 염출하고 인부를 고용하여 흙을 운반해 (제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당시에 오중吳中 사람 심충沈充이 전당 현령이었는데, 손님을 전송하느라 절강浙江(전당강錢塘江)을 건넜다. 〈심충과〉 손님이 〈배에서〉 나오자 전당정의 관리는 저공을 외양간으로 쫓아냈다. 〈전당정의 관리에게〉 물었다.
“외양간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관리가 대답하였다.
“어제 한 놈이 와서 정자에 투숙했는데, 존귀한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임시로 그를 〈외양간으로〉 옮겼습니다.”
심영은 취기가 오른 김에 멀리서 물었다.
“촌놈아, 떡을 먹고 싶은가? 이름이 무엇이냐? 함께 대화해보자.”
저공이 손을 들어 대답하였다.
하남河南 사람 저계야褚季野(저부)요.”
원근에서 오랫동안 저공의 이름을 들어왔던 터라 심영은 이에 크게 두려워했으나 감히 저공을 옮겨 가게 하지 못하고, 즉시 외양간에서 명함을 올리고 저공을 뵈었다. 또 가축을 잡아 요리를 만들어 저공 앞에 마련하고는 채찍으로 정자의 관리를 때려 부끄러운 죄를 사죄하고자 하였다. 저공은 심영과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말과 안색이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으니, 그 모습은 〈종전의 일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듯하였다. 심영은 저공을 〈현의〉 경계까지 전송하였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심충沈充이 전송한 사람은〉 왕돈王敦의 문객이 아니다.
◦ ‘오인吳人’은 어떤 본에는 ‘오흥吳興’으로 되어있다.


역주
역주1 送故 : 魏晉南北朝시대에 州郡의 수령이 전임될 때 그의 屬僚도 그를 따라 전임되는 것을 이른다.
역주2 조수가……거닐다가 : 浙江은 조수가 밀려왔을 때 그 물결의 모양과 소리가 굉장하여 옛날부터 ‘浙江觀潮’라고 유명했는데, 특히 한가위 무렵이 가장 볼만하여 음력 8월 18일을 ‘潮生日’이라고 불렀다.
역주3 傖父(촌놈) : 南北朝시대에 남방 사람이 북방 사람의 거칠고 비루한 태도를 기롱하여 그들에 대해 멸시의 의미를 담아 ‘창보’라고 하였다.
역주4 (興)[人] : 저본에는 ‘興’으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에 의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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