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오張輔吳(장소張昭)가注+① ≪오기吳紀≫에 말했다. “장소張昭는 자字가 자포子布로 팽성彭城 사람이다. 젊어서 학문을 좋아해 백후자안白侯子安에게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배웠으며 많은 서적을 두루 보았다. 낭야瑯琊의 조욱趙昱과 동해東海의 왕랑王朗과 함께 유명했으며 사이가 좋았다. 벼슬은 보오장군輔吳將軍을 지냈다.”손권孫權과 함께한 자리에서注+②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에 말했다. “손권孫權은 자字가 중모仲謀이다. 형인 손책孫策이 여러 군郡을 평정하고 나서 손권을 양선현장陽羨縣長으로 삼았다. 군郡에서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봉의교위奉義校尉의 직을 행하였다. 한漢나라 조정에서 유완劉琬을 파견해 손책에게
을 내렸는데, 유완이 사람들에게 ‘내가 살펴보건대, 손씨 형제는 비록 각각 재주가 뛰어나고 이름이 알려졌지만 모두 복록福祿을 끝까지 누리지 못할 상입니다. 오직 가운데 동생인 효렴(손권)만 용모가 특별하고 체격이 범상치 않아 크게 귀하게 될 표상을 지니고 있으며 또 가장 장수할 상입니다.’라고 하였다.”
에 말했다. “손견孫堅이 하비승下邳丞이었을 때 손권孫權이 태어났는데 턱은 각지고 입은 컸으며 눈에는 밝은 빛이 있어 손견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귀하게 될 상이라고 생각했다. 손책이 강동江東에서 거사하자 손권이 늘 수행했다. 성정과 도량이 넓고 밝았고, 인자하면서도 과단성이 많았으며, 협객을 좋아하고 선비를 양성하였다. 함께 계책을 세울 때마다 손책은 스스로 손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유자초劉子初(유파劉巴)는 도량이 좁으며 너무 심하게注+③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에 말했다. “유파劉巴는 자字가 자초子初로 영릉零陵증양烝陽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이름이 알려졌다. 선주先主(유비劉備)가 익주益州를 평정하고 불러서 좌장군서조연左將軍西曹掾으로 삼았다. 진군陳羣이 제갈량諸葛亮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는데 유파의 소식을 물으면서 ‘유군자초劉君子初’라고 칭하며 매우 존중하였다.”
에 말했다. “장비張飛가 유파에게 가서 묵은 적이 있었는데 유파가 말을 걸지 않자 장비는 분한 마음에 화가 일었다. 제갈량이 유파에게 ‘장비는 비록 무인이지만 족하足下를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주공主公이 지금 문인과 무인을 모아 대사大事를 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족하는 비록 천성이 고명高明하나 의당 뜻을 조금은 굽히셔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유파가 ‘대장부가 처세하면서 마땅히 사해四海의 영웅英雄들과 교제해야 할 것이지 어찌하여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유비劉備가 이를 듣고는 노하여 ‘나는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는데 유자초(유파)는 오로지 이를 어지럽히는구나. 그는 북쪽으로 돌아가려고 여기에서 길을 빌린 것이다. 어찌 나의 일을 이루어 주려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유비는 또 ‘유자초는 재주와 지혜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니 나 같은 사람이면 부릴 수 있어도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혼자서 부리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다. 제갈량도 ‘군막軍幕에서 계획을 짜는 일은 내가 유자초만은 못하지만, 북과 북채를 들고 군영軍營에 모여 백성들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전장에 나가게 하는 일은 마땅히 다른 사람과 의논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장비張飛를 거부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손권이 말했다.
“만약 유자초가 세상의 흐름을 쫓아 장익덕張翼徳(장비)의 뜻에 영합했다면 이는 사귀지 말아야 될 사람을 사귄 것이니, 어찌 고사髙士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注+④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에 말했다. “장비張飛는 자字가 익덕翼德으로 탁군涿郡 사람이다. 젊어서 관우關羽와 함께 선주先主(유비劉備)를 섬겼다. 선주가 한왕漢王이 되자 우장군右將軍에 제수되었다.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손권孫權
注
【두주頭註】
◦ ‘익翼’자가 ≪하씨어림何氏語林≫에서는 ‘현玄’자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에는 실려 있지 않고 ≪何氏語林≫에 실려 있는 것에 의거하여 ‘補’자를 보충하였다.
역주2錫命 :
천자가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리는 은혜로운 명령으로, 의복같은 여러 물건을 함께 하사하였다.
역주3≪江表傳≫ :
西晉의 虞溥가 지었다. ≪舊唐書≫ 〈經籍志〉와 ≪新唐書≫ 〈藝文志〉에는 5권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고 일부만 전한다. 江表는 長江 이남의 지역으로 南方 六朝에 대한 범칭이다.
역주4≪零陵先賢傳≫ :
≪隋書≫ 〈經籍志〉와 ≪舊唐書≫, ≪新唐書≫ 모두 1권이라고만 하고 저자를 밝히지 않았다.
역주5名 :
≪三國志≫ 〈吳志〉와 ≪世說新語≫ 〈容止〉에 인용된 〈吳志〉에는 모두 ‘明’으로 되어 있다.
역주6晴(精) :
저본에는 ‘晴’으로 되어 있으나, ≪何氏語林≫과 ≪李卓吾批點世說新語補≫(安永本)에는 ‘睛’으로 되어 있고, ≪郝氏續後漢書≫ 〈孫權列傳〉, ≪太平御覽≫ 〈偏霸部〉 등에는 모두 ‘精’으로 되어 있다. 눈속의 밝은 빛을 뜻할 때 ‘睛’과 ‘精’는 서로 통하므로 이것과 위의 여러 서적에 의거하여 ‘精’으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