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① 佛經之行中國, 尙矣, 莫詳其始. 牟子曰 “漢明帝夜夢神人, 身有日光. 明日博問群臣, 通人傅毅對曰 ‘臣聞天竺有道者, 號曰佛, 輕擧能飛, 身有日光, 殆將其神也.’ 於是, 遣羽林將軍秦景․博士弟子王遵等十二人, 之大月氏國, 寫取佛經四十二, 在蘭臺石室.” 劉子政列仙傳曰 “歷觀百家之中, 以相檢驗, 得仙者百四十六人. 其七十四人已在佛經, 故撰得七十, 可以多聞博識者遐觀焉.” 此卽漢成․哀之間, 已有經矣, 與牟子傳記, 便爲不同. 魏略西戎傳曰 “天竺城中有臨兒國. 浮屠經云 ‘其國王生浮圖, 浮圖者, 太子也. 父曰屑頭邪, 母曰莫邪. 浮屠者, 身色黃, 髮如靑絲, 爪如銅. 其母夢白象而孕, 及生, 從右脅出而有髻, 墜地能行七步.’ 天竺又有神人, 曰沙律. 昔漢哀帝元壽元年, 博士弟子景慮, 受大月氏王使伊存口傳浮屠經, 曰 ‘復豆者, 其人也.’” 漢武故事曰 “昆邪王殺休屠王, 以其衆來降, 得其金人之神, 置之甘泉宮, 金人皆長丈餘. 其祭不用牛羊, 惟燒香禮拜, 上使依其國俗祀之.” 此神全類於佛, 豈當漢武之時, 其經未行於中土, 而但神明事之邪. 故驗劉向․魚豢之說, 佛至自哀․成之世, 明矣. 然則所言四十二者, 其文今存非妄, 盖明帝遣使廣求異聞, 非是時無經也.이라하다
8-18 은중군殷中軍(은호殷浩)이 불경佛經을 보고 말하였다.
“이치가 응당
에 있지.”
注+① 불경이 중국에 유행한 지 오래되었으나 그 시초는 알지 못한다.
에 말하였다. “한漢 명제明帝가 밤에 꿈을 꾸었는데, 몸에 태양 같은 광채가 나는 신인神人이 등장하였다. 다음날 여러 신하에게 〈이에 대해〉 널리 물었더니, 모든 것에 통달한 사람인 부의傅毅가 대답하였다. ‘제가 들으니, 천축天竺에 불佛(부처)이라고 불리는 도통한 자가 있는데, 가볍게 뛰어 올라 날아다닐 수 있고 몸에 태양 같은 광채가 난다고 하니 아마 그 신인인 듯합니다.’ 이에 우림장군羽林將軍 진경秦景과 박사제자博士弟子 왕준王遵 등 12명을 대월지국大月氏國에 파견하여 불경 을 필사해서 가져오게 하고, 그것을 난대석실蘭臺石室(궁중도서관)에 보관하였다.”
유자정劉子政(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에 말하였다. “모든 학파의 책을 두루 살펴보면서 검사하고 증명해보니 신선이 된 자가 146명인데, 그 가운데 74명은 이미 불경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의 행적을 찬술하여 박학다식한 사람들이 두루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다면
어환魚豢의 ≪위략魏略≫ 〈서융전西戎傳〉에 말하였다. “천축국天竺國의 성城 가운데 임아국臨兒國(룸비니, Lumbinī)이 있다. ≪부도경浮屠經≫에 ‘그 국왕이 부도浮圖(붓다, Buddha)를 낳았는데, 부도는 〈그 나라의〉 태자太子이다. 부친의 이름은 설두사屑頭邪(슈도다나, Śuddhodana)이고, 모친의 이름은 막야莫邪(마야, Māyā)이다. 부도는 몸의 빛깔이 황금색이고 머리카락이 푸른 실과 같으며 손톱이 구리와 같았다. 그 모친이 꿈에 흰 코끼리를 본 뒤에 잉태했는데, 태어날 때 모친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오고 상투가 있으며, 땅에 떨어졌을 때 일곱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하였다. 천축국에 또 사율沙律이라는 신인이 있다. 옛날 한 애제 원수元壽 원년(B.C. 2)에 박사제자 경려景慮가 대월지국 왕의 사신 이존伊存이 구전으로 전해준 ≪부도경≫을 받았는데, 〈그 내용에 보이는〉 ‘복두復豆(Buddha)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였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말하였다. “〈흉노의〉 혼야왕昆邪王이 휴도왕休屠王을 살해하고 그 백성을 데리고 와서 투항했을 때 황금 신상神像을 얻어 감천궁甘泉宮에 안치했는데, 황금 신상은 모두 키가 1장丈 남짓이었다. 〈투항한 자들이〉 이 황금 신상에 제사 지낼 때, 소나 양을 쓰지 않고 단지 향을 사르면서 예배할 뿐이었는데, 황제가 그 나라의 풍속에 따라 제사 지내게 하였다.”
이러한 신은 부처와 완전히 같은 것이니, 한 무제 시대에 그 경전이 중국에 유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찌 단지 신명神明으로 섬겼겠는가. 그러므로 그렇다면 ≪모자≫의 기록에서 언급한 ≪사십이장경≫은 그 문장이 현재 존재하여 거짓이 아니니, 아마 명제가 사신을 파견하여 신기한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이고 그때 불경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