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말하였다. “진번陳藩은 자가 중거仲擧이고 여남汝南평예平輿 사람이다. 집이 있었는데 황폐하게 버려두고 청소하지 않으면서 ‘대장부는 국가를 위하여 천하를 청소해야 한다.’ 하였다. 한漢환제桓帝 말에 환관이 권력을 남용하고 외척이 횡포를 부렸는데, 태부太傅에 임명되자 대장군 두무竇武와 함께 환관을 제거하고자 도모하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에 말하였다. “진번이 상서尙書가 되었는데 그의 충정忠正함이 귀척貴戚에게 거슬렸기 때문에 상서성尙書省에 있을 수 없어 예장태수로 옮겼다.” 부임하자마자 서유자徐孺子(서치徐穉)가 있는 곳을 묻고 먼저 그를 만나고자 하였다.注+② 사승謝承의 ≪후한서後漢書≫에 말하였다. “서치徐穉는 자字가 유자孺子이고, 예장豫章남창南昌 사람이다. 깨끗하고 고상함이 특출하였고 세속을 초탈하였다. 전후로 여러 공公의 부름을 받았는데 비록 응하여 나아가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죽으면 만 리 밖까지 조문하러 갔다. 〈갈 때는〉 항상 미리 구운 닭 한 마리를 준비하고 면綿을 술에다 적셨다가 다 마르면 그것으로 닭을 싸서 곧바로 조문할 묘도墓道 밖에 가서 면을 물에 적셔 쌀밥 한 말에 흰 띠풀을 깔고 닭을 앞에 놓았다. 강신하고 술을 올려 제사한 뒤 명함만 남기고 즉시 떠나 상주喪主를 만나지 않았다.”주부主簿가 말하였다.
“무왕武王은 상용商容이 사는 마을의 문에 절을 하느라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었는데,注+③ 허숙중許叔重(허신許愼)이 말하였다. “상용商容은 은殷나라의 현인으로 노자老子의 스승이다. 수레 위에서 몸을 굽혀 절하는 것을 식式이라 한다.” 내가 현자賢者를 예우하는 것이 어찌 안 된단 말인가.”注+④ 원굉袁宏의 ≪후한기後漢紀≫에 말하였다. “진번陳蕃이 예장豫章에 있을 때 오로지 서치徐穉만을 위해 걸상 하나를 마련하고 그가 가고 나면 그것을 매달아놓았으니, 〈서치가〉 예우를 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注
【두주頭註】
◦ 유응등劉應登:진번陳蕃은 곧바로 유자孺子(서치徐穉)를 만나기를 원하였고, 주부主簿는 그가 관청에 들어간 뒤 나중에 만나기를 원하였음을 말한다.
역주
역주1汝南先賢傳 :
魏(三國)나라 사람 周斐(주비)가 편찬한 책으로, 汝南(河南省) 출신 인물들의 전기를 다루었다. 5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散失되었고 輯本이 있다. 주비는 여남군 安成 사람으로, 西晉때 인물인 周浚의 부친이며, 少府卿(3品)을 지냈다.
역주2海內先賢傳 :
魏(三國)나라 明帝 때 4권으로 편찬된 책이다. 撰者는 미상이나 ≪舊唐書≫ 〈藝文志〉에는 이 책의 찬자를 魏 明帝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