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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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歐陽率更 行見古碑注+① 張懷瓘書斷曰 “歐陽詢, 字信本, 長沙汩羅人. 官至太子率更令. 善書, 筆力勁險, 篆體尤妙. 高麗國王愛其書, 遣使請焉, 神堯曰 ‘不意詢之書名, 遠播夷狄.’”하니 是索靖所書注+② 羊愔能書人姓名曰 “燉煌索靖, 張芝姊之孫, 官至征南司馬. 善草書.”注+③ 抱朴子曰 “善書者, 中州則有索靖, 用古體, 飄乎若起鴻之乘勁風, 騰鱗之躡驚雲.” 駐馬觀之하고 良久而去라가
數百步 復還하여 下馬佇立이러니 疲倦하니 則布毯坐觀하고 三日乃去


26-15 【구양율경歐陽率更(구양순歐陽詢)이 출타했다가 옛 비문을 보았는데,注+의 ≪서단書斷≫에 말하였다. “구양순歐陽詢신본信本으로, 장사군長沙郡 汩羅縣 사람이다. 관직이 태자율경령太子率更令에 이르렀다. 서법에 뛰어나고 필력이 힘찼는데, 전서체篆書體가 더욱 오묘하였다. 고려高麗(고구려) 국왕이 그의 글씨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사신을 파견하여 〈그의 글씨를〉 요청하자, 신요神堯( 고조高祖 이연李淵)가 ‘구양순의 서법의 명성이 멀리 오랑캐에게까지 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라고 하였다.” 이는 이 쓴 것이었다.注+의 ≪능서인성명能書人姓名≫에 말하였다. “돈황燉煌 사람 색정索靖의 누나의 손자로, 관직이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사마융司馬肜)의 사마司馬에 이르렀다. 초서草書에 뛰어났다.”注+③ ≪포박자抱朴子≫에 말하였다. “ 말을 세우고 그것을 살펴보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 떠났다.
몇 백 걸음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말에서 내려 우두커니 서 있다가 피곤해지자 모포를 펼치고 앉아서 살펴보고 3일 뒤에야 떠났다.


역주
역주1 張懷瓘 : 唐 揚州 海陵縣 사람이다. 玄宗 開元 연간(713~741)에 翰林院供奉․右率府兵曹參軍을 역임했다. 자신의 書法에 큰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草書는 수백 년 동안 독보적이고 싶다.”고 하였다. 저서로 ≪書議≫․≪書斷≫․≪書估≫․≪畵斷≫․≪評書藥石論≫․≪六体書論≫․≪論用筆十法≫․≪玉堂禁經≫․≪文字論≫ 등이 있다.
역주2 索靖 : 239~303. 西晉 甘肅省 敦煌郡 사람으로, 字는 幼安이다. 趙王(司馬倫)이 반란을 일으키자 공을 세워 散騎常侍의 벼슬에 올랐으나, 八王의 난 때 河間王(司馬顒)의 반군을 진압하던 중 전사하였다. 韋誕에게 글씨를 배웠으며 특히 草書와 八分書에 뛰어났다.
역주3 羊愔 : ≪서사회요≫에 “양음은 魏 平北將軍 羊乂의 아들로, 초서를 잘 썼다.”고 하였다.(≪世說音釋≫)
역주4 張芝 : ?~약192. 後漢 敦煌郡 源泉縣 사람으로, 字는 伯英이다. 그는 ‘草書의 비조’ 또는 ‘草聖’으로, 그의 서법은 ‘一筆書’로 일컬어졌고, 고매한 지조가 있어 張有道라고도 불렸다. 崔瑗과 杜度의 서법을 배웠으며, 연못가에서 글씨를 연습하여 연못 물이 검게 변하였다고 한다. 鍾繇․王羲之․王獻之와 더불어 ‘書中四賢’이라고 일컬어졌다.
역주5 서법에……듯하다 : ≪抱朴子≫ 〈譏惑〉과 〈接疏〉의 내용을 축약한 내용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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