羊孚作雪贊
注+① 羊氏譜曰 “孚, 字子道, 泰山人. 祖楷, 尙書郞, 父綏, 中書郞. 孚歷太學博士․州別駕․太尉參軍, 年四十六卒.”하여 云
桓胤
이 遂以書扇
注+② 中興書曰 “胤, 字茂, 譙國人. 祖冲, 太尉, 父嗣, 江州刺史. 胤少有淸操, 以恬退見稱. 仕至中書令. 玄敗, 徙安成郡, 後見誅.”이라
9-12
양부羊孚가 지은 〈
설찬雪贊〉에 말하였다.
注+① ≪양씨보羊氏譜≫에 말하였다. “양부羊孚는 자字가 자도子道로, 태산泰山 사람이다. 조부 양해羊楷는 상서랑尙書郞을, 부친 양수羊綏는 중서랑中書郞을 역임하였다. 양부는 태학박사太學博士․주별가州別駕․태위참군太尉參軍을 역임하고,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물의〉 맑음에 힘입어 〈눈으로〉 변화하고 바람을 타고 흩날리니,
경물을 만나면 선명하게 만들고 깨끗한 곳으로 나아가면 광채가 나네.”
환윤桓胤이 마침내 이 구절을 부채에 썼다.
注+②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환윤桓胤은 자字가 무원茂遠으로, 초국譙國 사람이다. 조부 환충桓冲은 태위太尉를, 부친 환사桓嗣는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역임하였다. 환윤은 젊을 때부터 고상한 절조를 지녔고, 욕심이 없고 겸손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관직은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다. 환현桓玄이 〈모반했다가〉 패배하자 으로 유배 갔다가 이후에 주살 당했다.”
注
◦ 유씨劉氏:이소理所(이치가 있는 곳)에 나아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