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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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陶公 性檢厲하고 勤於事注+① 晉陽秋曰 “侃練核庶事, 勤務稼穡. 雖戎陳武士, 皆勸厲之, 有奉饋者, 皆問其所由, 若力役所致, 懽喜慰賜, 若他所得, 則呵辱還之. 是以軍民勤於農稼, 家給人足. 性纖密好問, 頗類趙廣漢. 嘗課營種柳, 都尉夏施盜拔武昌郡西門所種. 侃後自出, 駐車施門, 問‘此是武昌西門柳, 何以盜之?’ 施惶怖首伏. 三軍稱其明察. 侃勤而整, 自强不息. 又好督勸於人, 常云 ‘民生在勤. 大禹聖人, 猶惜寸陰, 至於凡俗, 當惜分陰, 豈可遊逸? 生無益於時, 死無聞於後, 是自棄也. 又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 而不敢行. 君子當正其衣冠, 攝以威儀, 何有亂頭養望, 自謂宏達耶?’” 中興書曰 “侃嘗檢校佐吏, 若得樗蒲․之具, 投之曰 ‘樗蒲, 老子入胡所作, 外國戱耳, , 堯舜以敎愚子, 博奕, 紂所造, 諸君國器, 何以爲此? 若王事之暇患邑邑者, 文士何不讀書? 武士何不射弓?’ 談者無以易也.” 作荊州時 勑船官하여鋸木屑하되 不限多少하니 咸不解此意 後正會 值積雪始晴한대 廳事前 除雪後猶濕하니 於是 悉用木屑하여 覆之하니 都無所妨하다
官用竹 皆令錄厚頭하니 積之如山한대 後桓宣武 伐蜀裝船할새 悉以作釘하다
又云 嘗發所在竹篙한대 有一官長 連根取之하여 仍當足하니 乃超兩階用之하다
【頭註】
劉云 “謂就連竹根以爲篙, 以代鐵足.”
劉云 “非此解, 殆不喩.”


6-15 도공陶公(도간陶侃)은 성품이 검소하였고 일에 열심이었다.注+①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도간陶侃은 모든 일에 숙달되고 정통하였으며 농사에 부지런히 힘썼다. 비록 군영의 무사武士라 하더라도 모두 격려해주었고, 선물을 바치는 자가 있으면 모두 그 이유를 물어 만약 역역力役으로 얻은 것이면 기뻐하고 위로하였으나 만약 달리 얻은 것이면 꾸짖고 되돌려주었다. 이 때문에 군민軍民이 농사를 부지런히 지어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되었다. 성품은 섬세하고 꼼꼼하였으며 묻기를 좋아하여 과 상당히 흡사하였다. 한번은 군영에 버드나무를 심으라고 시켰는데 도위都尉 하시夏施무창군武昌郡 서문西門에 심었던 버드나무를 훔쳐 뽑아왔다. 도간이 후에 직접 나가 수레를 하시의 군문에 멈추고 ‘이것은 무창군 서문에 있던 버드나무인데 어찌하여 훔쳤는가?’라고 물으니, 하시가 두려워 죄를 자백하였다. 삼군三軍이 그의 명철함을 칭송하였다. 도간은 부지런하고 엄정하였으며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또 사람들을 독려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항상 ‘백성의 생활은 근면에 달려 있다. 임금은 성인이신데도 촌음寸陰을 아꼈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마땅히 분음分陰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가. 생전에는 당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죽어서는 후세에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또 노자老子장자莊子의 말은 허황되어 선왕先王법언法言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衣冠을 바로하고 위의威儀를 지켜야 하는데, 어찌 머리를 산발하고 거짓 명성을 쌓으며 스스로 굉달宏達하다고 여긴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도간이 검교좌리檢校佐吏였을 때 쌍륙雙六, 바둑에 쓰는 기구를 얻으면 던져버리고 ‘저포는 노자老子가 오랑캐 땅에 들어가서 만든 것이니 외국의 유희일 뿐이고, 위기圍棊요순堯舜이 어리석은 자식을 가르칠 때 썼던 것이며, 쌍륙과 바둑은 가 만든 것인데, 그대들은 국가의 인재들로서 어찌하여 이런 것을 한단 말인가. 만약 공무를 수행하는 여가에 무료할까 걱정된다면, 문사文士는 어찌 서책을 읽지 않고 무사武士는 어찌 활을 쏘지 않는가?’ 하니, 담론하는 자들이 어떻게도 〈그의 뜻을〉 바꿀 수가 없었다.”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을 때 선관船官에게 지시하여 나무를 톱질할 때 나온 톱밥을 양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모두 모으게 하니 모두 이렇게 하는 의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후에 정월 첫 조회 날에 눈이 쌓인 뒤 갰는데 관사 앞마당은 눈을 치운 뒤에도 여전히 질척거렸다. 그러자 〈모은〉 톱밥을 모두 써서 땅에 덮으니 전혀 지장이 없게 되었다.
관청에서 대나무를 쓸 때는 모두 두꺼운 머리 부분을 모으게 하니 〈대나무 조각이〉 산처럼 쌓였다. 나중에 환선무桓宣武(환온桓溫)가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선박을 만들 때 그것을 모두 못으로 만들었다.
또 “한번은 소재지의 대나무 장대를 징발하였는데, 어떤 관장官長이 대나무 뿌리를 이어서 〈장대로 삼아〉 철족鐵足을 대신하니 마침내 〈상으로〉 두 품계를 뛰어 그를 서용하였다.”고 한다.
두주頭註
유신옹劉辰翁:〈‘연근취지連根取之 잉당족仍當足’은〉 대나무 뿌리를 가지고 연결하여 장대로 삼아 철족鐵足을 대신하였음을 말한다.
유진옹劉辰翁:이 해설이 아니면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역주
역주1 趙廣漢 : ?∼B.C. 65. 西漢 宣帝 때 사람으로, 潁川太守와 京兆尹 등을 지냈다. 권력자나 귀족에게 굽히지 않고 법을 집행한 것으로 이름났다.(≪漢書≫ 〈趙廣漢傳〉)
역주2 樗蒲 : 옛날의 도박 성격의 놀이로, 漢나라 때부터 있었고 晉나라 때 더욱 성행하였다. 검은 송아지[黑犢], 꿩, 개[盧] 등 5가지 색이 있는 주사위를 던져 승부를 정하였는데, 개가 나오면 이겼다.(≪世說音釋≫)
역주3 博奕 : 옛날의 도박 성격의 놀이로, 말판에 12갈래의 길이 있으며 말은 흑백 각각 6개이다. 上古때 烏曹가 만들었다 한다.(≪世說音釋≫)
역주4 圍碁 : 바둑의 일종으로, 奕이라고도 한다. 堯임금이 처음 만들었고, 丹朱가 잘하였다고 한다. 양쪽이 黑과 白의 바둑돌로 서로 둘러싸서 공격하여 죽이기 때문에 ‘圍碁’라 하였다.(≪世說音釋≫)
역주5 : 收集․采取의 뜻이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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