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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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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越石 爲胡騎所圍 數重하여 城中窘迫無計 始夕乘月하여 登樓淸嘯하니 胡賊聞之하고 皆悽然長歎하며
中夜 吹奏胡笳하니 賊皆流涕하고 人有懷土之切하며 向曉又吹하니 賊并圍奔去 或云 是劉王喬注+① 曹嘉之晉紀曰 “劉疇, 字王喬, 彭城人. 父訥, 司隷校尉. 疇善談名理, 有重名. 永嘉中, 爲閻鼎所害.”라하다
【頭註】
李云 “此非雅量, 退胡之計也. 琨本善嘯.”


13-4 이 〈진양성晉陽城에서〉 호적胡賊기병騎兵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 성 안에서 대책 없이 매우 곤란을 겪었다. 유월석이 초저녁에 달빛을 맞으면서 누각에 올라 청아하게 휘파람을 불자, 호적이 듣고는 모두 쓸쓸히 길게 탄식하였다.
한밤중에 호가胡笳(풀피리)를 불자, 호적이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저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을 지니게 되었다. 새벽녘에 또 〈호가를〉 불자, 호적이 모두 포위 대열에서 일어나 달아났다. 혹자는 〈이 일화의 주인공은 유월석이 아니라〉 유왕교劉王喬(유주劉疇)라고 하였다.注+의 ≪진기晉紀≫에 말하였다. “유주劉疇왕교王喬로, 팽성彭城 사람이다. 부친 유눌劉訥사예교위司隷校尉를 역임하였다. 유주는 의 담론에 뛰어나 큰 명성이 있었다. 영가永嘉 연간(307~312)에 에게 살해당했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이 내용은 아량雅量이 아니라, 호적胡賊을 물리치는 계책이다. 유곤劉琨은 본래 휘파람을 잘 불었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劉越石(劉琨) : 271~318. 中山 魏昌 사람으로, 字는 越石, 시호는 愍이다. 晉나라 幷州刺史ㆍ司空ㆍ大將軍 등을 역임하였다.
역주3 曹嘉之 : 曹嘉라고도 한다. 魏(三國)나라의 楚王 曹彪의 아들로, 晉나라 때에 高邑公에 봉해지고 國子博士․東莞太守․前軍恣議를 역임하였고, 조표와 王凌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賜死되었다.
역주4 名理 : 명칭과 이치라는 뜻으로, 魏晉시대 및 그 이후의 淸談家들이 사물의 명칭과 이치가 같은지 다른지, 옳은지 그른지를 변별하고 분석하였다.
역주5 閻鼎 : ?~312. 甘肅 天水 사람으로, 字는 臺臣이다. 太傅인 司馬越의 參軍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卷縣의 현령으로 옮기고 行豫州刺史가 되었다. 秦王 司馬鄴을 황태자로 옹립하여 太子詹事가 되었고, 永嘉 6년(312) 12월 조정에 내란이 벌어져 雍州로 달아났다가 氐族인 竇首에게 살해당했다.
역주6 : 安永本에는 ‘觧’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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