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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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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史雲 遭黨錮하여 推鹿車載妻子하고 以捃拾自資러니 兒嘗拾得五斛麥한대 隣人尹臺 遺之一斛하고 囑兒不得通하다 史雲 後知하고 卽令併送六斛還尹하고 言麥已雜이라하고 誓不肯受注+① 范曄後漢書曰 “范丹, 字史雲, 陳留外黃人. 從樊英․馬融受經, 好違時絶俗, 爲詭激之行. 桓帝時, 爲萊蕪長, 遁居梁․沛之間, 所止單陋, 有時絶粒, 窮居自若. 後辟太尉府, 以疾不行. 年七十四卒. 謚曰貞節先生.”하다
【頭註】
李云 “無味.”


1-7【범사운范史雲(범단范丹)이 를 만나 처자를 태운 를 밀고 〈땅에 떨어진 낟알을〉 주워 먹으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한번은 아이가 보리 5을 주웠는데 이웃 사람인 윤대尹臺가 1곡을 주면서 아이에게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범사운이 나중에 알고 즉시 6곡 모두 윤대에게 되돌려주게 하고 앞으로 절대 받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注+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범염전范冉傳〉에 말하였다. “은 자가 사운史雲이고, 진류陳留 외황外黃 사람이다. 에게 경학을 배웠는데, 시대와 어긋나고 시속과 동떨어진 것을 좋아하고, 기괴하고 파격적인 행동을 하였다. 환제桓帝내무장萊蕪長이 되어 사이에 숨어 살았는데, 사는 곳은 단출하고 누추하였으며 어떤 때는 쌀이 떨어져 곤궁하게 지냈는데도 태연자약하였다. 나중에 태위부太尉府의 부름을 받았으나 병을 이유로 가지 않았다. 74세에 죽었다. 시호는 정절선생貞節先生이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아무 맛이 없다.


역주
역주1 黨錮의 화 : 東漢 桓帝․靈帝 때 사대부와 귀족들이 宦官이 정사를 어지럽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환관들과 黨爭을 한 사건을 가리킨다. 환관이 자신들을 반대하는 士人을 ‘黨人’이라는 죄로 禁錮하여 仕官을 막거나 誅殺하였으므로 ‘黨錮의 禍’로 일컬어졌다. 黄巾의 亂과 함께 漢朝의 멸망을 초래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後漢書≫ 〈黨錮列傳〉)
역주2 鹿車 : 사슴 한 마리가 탈 만한 작은 수레로, 소나 말이 없이도 갈 수 있다.
역주3 : 용량의 단위로, 10말[斗]이 1斛이다.
역주4 보리가……말하며 : 尹臺가 준 보리와 아들이 주운 보리가 섞였다는 것을 말한다.
역주5 范丹 : ≪後漢書≫에는 ‘范冉(범염)’으로 되어 있으며, 李賢의 注에 “〈冉이〉 ‘丹’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고 하였다.(≪後漢書≫ 〈范冉傳〉) 蔡邕의 ≪蔡中郎集≫ 〈貞節先生陳留范史雲碑〉에는 ‘丹’으로 되어 있다.
역주6 樊英 : 東漢 安帝․順帝 때 활동한 易學家이자 術數家로, 字는 季齊이고 南陽郡 魯陽縣(지금의 河南省 魯山縣) 사람이다. 어려서 三輔(長安 京畿 지역)에 가서 ≪京氏易≫과 ≪五經≫을 배웠고 讖緯學에 뛰어났다. 후에 壺山 남쪽에 은거하였는데 사방에서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道術에도 뛰어나 조정에 災異가 있으면 늘 그에게 물었다 한다. 그가 저술한 ≪易章句≫는 사람들이 “樊氏學”이라 부를 정도로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後漢書≫ 〈方術傳〉)
역주7 馬融 : 79~166. 東漢 때의 經學家로 ≪易經≫에 정통하였으며, 字는 季長이고 扶風郡 茂陵縣(지금의 陝西省 興平東北) 사람이다. 동한의 名將 馬援의 종손이다. 南郡太守를 지냈기 때문에 馬南郡이라고도 부른다. ≪孝經≫․≪論語≫․≪詩≫․≪周易≫․≪三禮≫․≪尙書≫․≪列女傳≫․≪老子≫․≪淮南子≫ 등과 같은 여러 경전의 注를 내서 儒術을 전파하는데 공헌하였으나 모두 散佚되었고, 明나라 때 輯錄한 ≪馬季長集≫과 淸나라 때 집록한 ≪玉函山房叢書≫․≪漢學堂叢書≫가 남아 있다. 盧植과 鄭玄 등이 모두 그의 門徒이다.(≪後漢書≫ 〈馬融傳〉)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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