顧常侍
는 清介持操
注+① 南史曰 “顧協, 字正禮, 吳郡吳人, 晉司空和六世孫. 少有志操, 內弟張率薦於武帝, 帝問協年, 率言三十五, 帝曰 ‘北方高凉, 南方卑濕, 三十便衰, 如協便爲已老. 但其事親孝, 與友信, 亦不可遺於草澤.’ 於是以協爲太常博士. 終散騎常侍舍人.”라 爲廷尉正時
에 冬服單薄
하니 寺卿蔡子度
注+② 宋書曰 “蔡廓, 字子度, 濟陽考城人. 曾祖謨, 晉司徒, 祖系, 撫軍長史, 父綝, 司徒左西屬. 廓博涉群書, 言行以禮. 起家著作佐郎, 以方鯁閑素, 爲高祖所知. 歷官參軍․太尉從事中郎.”가 謂人曰
我欲解身上襦하여 與顧郎이나 恐顧郎難衣食者라하고
2-16【
보補】
고상시顧常侍(
고협顧協)는 청렴하고 꼿꼿하며 절조가 있었다.
注+① ≪남사南史≫ 〈고협전顧協傳〉에 말하였다. “고협顧協은 자字가 정례正禮이고 오군吳郡 오吳 사람이며, 진晉나라 사공司空 고화顧和의 6세손이다. 젊어서부터 지조가 있어 내제內弟인 장솔張率이 양梁 무제武帝에게 천거하였다. 무제가 고협의 나이를 묻자 장솔이 35세라고 말하니, 무제가 말하기를 ‘북방지역은 땅이 높고 서늘하여 40세에도 〈지력智力과 체력體力이〉 강하여 벼슬을 하고, 남방 지역은 땅이 낮고 습하여 30세면 노쇠하니 고협 같은 자는 이미 노쇠한 것이다. 다만 그가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벗들과 신의信義로 교유하니 역시 초야에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이에 고협을 태상박사太常博士로 삼았다. 산기상시사인散騎常侍舍人으로 있다가 죽었다.” 정위정廷尉正이었을 때 〈입고 있는〉 겨울옷이 얇은 홑겹이자,
채자도蔡子度(
채곽蔡廓)가
注+② ≪송서宋書≫ 〈채곽전蔡廓傳〉에 말하였다. “채곽蔡廓은 자字가 자도子度이고 제양濟陽 고성考城 사람이다. 증조부 채모蔡謨는 진晉나라의 사도司徒였고, 조부 채계蔡系는 무군장사撫軍長史였으며, 부친 채침蔡綝은 사도부司徒府 좌서조左西曹의 속관屬官이었다. 채곽은 서적을 폭넓게 섭렵하였고 말과 행동을 예禮에 맞게 하였다. 저작좌랑著作佐郎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직하고 소탈한 것으로 고조高祖의 인정을 받았다. 참군參軍․태위종사중랑太尉從事中郎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몸에 걸쳤던 웃옷을 벗어 고랑顧郎(고협)에게 주고 싶으나 고랑이 옷과 음식을 곤란하게 여길까 염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