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3 【보補】 최사도崔司徒(최호崔浩)는注+① ≪북사北史≫에 말했다. “최호崔浩는 자字가 백심伯深으로 청하淸河동무성東武城 사람이다. 부친 최굉崔宏은 북위北魏에서 벼슬하여 천부대인天部大人에 제수되었고 공公의 작위에 올랐다. 최호는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사經史․현상玄象[천문]․음양陰陽과 제자백가의 학설을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북위北魏의〉 명원제明元帝(탁발사拓跋嗣)가
를 좋아하여 최호에게 길흉吉凶을 점치고 천문天文 현상을 관찰하여 의심스러운 일들을 상고하고 결정하도록 했는데, 적중하는 일이 많았다. 천성이 노장老莊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글을 짓는 데 뛰어나지 않았으나 제도制度와 법령法令에는 관심을 두었다. 피부가 희고 깨끗하여 아름다운 여인 같았다. 책략에 뛰어나 스스로를 장량張良에 견주었는데 옛일을 고찰하는 것은 그보다 뛰어나다고 여겼다. 처음에는 박사좨주博士祭酒에 제수되었고 〈나중에는〉 특진무군대장군特進撫軍大將軍과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에 이르렀다.” 매번 노현盧玄과 이야기를 나누기만 하면 감탄하며 말했다.
“자진子眞(노현)을 마주하면 나로 하여금 회고懷古의 정情이 더욱 깊어지게 하는구나.”注+② ≪북사北史≫에 말했다 “노현盧玄은 자字가 자진子眞으로 범양范陽탁涿 사람이다. 증조부 노담盧諶은 진晉나라 사공종사중랑司空從事中郞이었다. 조부 노언盧偃과 부친 노막盧邈은
아래에서 벼슬했는데 모두 문아文雅하다는 칭송을 들었다. 신가神䴥 4년(431)에 태무제太武帝(탁발도拓跋燾)가 뛰어난 학자를 초빙하였는데 노현을 으뜸으로 여겨 중서박사中書博士에 제수하였다가 〈나중에〉 시랑侍郞으로 옮겼다. 최호崔浩가 인륜人倫을 정돈하고 성씨姓氏와 종족宗族을 분명하게 하려고 하자, 노현이 ‘제도를 만들고 업적을 세우는 것은 각각 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번 생각해야 합니다.’하였다. 최호가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역주3나중에는……패망하였다 :
太武帝의 太平真君 10년(450)에 國史의 편찬을 맡으면서 北魏의 통치자인 拓跋氏 선조들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그대로 기록하였다가 황제의 분노를 사서 친인척인 范陽 盧氏․太原 郭氏․河東 柳氏 등과 함께 멸문지화를 당하였다.(≪北史≫ 〈崔浩列傳〉)
역주4(后)[武] :
저본과 ≪何氏語林≫에는 ‘后’로 되어 있으나 ≪北史≫ 〈盧玄列傳〉과 ‘神䴥’가 太武帝의 연호인 것에 의거하여 ‘武’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