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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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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長史至性凝簡하고 不狎當世러니 嘗從容語諸子曰
吾家門户 所謂이니 自可隨流平進이요 不須茍求注+① 南史曰 “王騫, 字思寂, 太尉儉之子也. 性凝簡, 慕樂廣之爲人. 諸女子姪皆嬪王尙主, 輜輧塡咽, 非所欲也. 有田八十餘頃, 與諸宅及故舊共佃之, 常曰 ‘我不如鄭公業有田四百頃, 而食常不周.’ 以此爲愧. 仕至度支尙書, 加給事中.”라하다


20-15 【왕장사王長史(왕건王騫)는 더할 나위 없는 성품에 장중하고 소박하였으며 당시의 권문세가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한번은 조용히 자식들에게 말했다.
자연히 흐름을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면 될 것이다. 구차하게 구할 것 없다.”注+① ≪남사南史≫에 말했다. “왕건王騫사적思寂으로 태위太尉 왕검王儉의 아들이다. 성품이 장중하고 소박하였으며 악광樂廣의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그들이 인사하러 오느라〉 수레가 붐벼 혼잡하였는데 〈왕건은〉 이러한 것을 원치 않았다. 80여 의 전답이 있었는데, 여러 집과 친구들과 공동으로 경작하였다. 항상 〈사람들에게〉 ‘나는 정공업鄭公業(정태鄭泰)이 전답 400을 가졌으면서도 먹을 밥이 늘 넉넉하지 못했던 것만 못하다.’라며 이를 부끄러워했다. 벼슬은 탁지상서度支尙書에 이르렀으며 급사중給事中을 더해 받았다.”


역주
역주1 우리……世族이니 : 왕건의 조부 王僧綽은 侍中을 지냈고 조모는 宋文帝의 嫡女인 東陽公主이며 부친 王儉은 中書監이었다. 그리고 황실의 인척이었다.
역주2 집안의……장가갔는데 : 누이는 隨王 蕭子隆에게 시집갔고, 동생 王暕은 齊 高帝의 딸인 淮南公主에게 장가갔고, 딸 王靈賓은 梁 簡文帝 蕭綱에게 시집갔다.
역주3 : 토지 면적의 단위이다. 100畝가 1頃이다.
역주4 素族 : ≪世說音釋≫에서는 “‘素’는 흼이요 바탕이다. 그러므로 평민이 사는 집을 素門이라 하고 한미한 선비를 素士라고 한다.”라고 하여 ‘素族’을 ‘한미한 집안’의 뜻으로 보았다. 그러나 ‘素族’에는 ‘世族’ 즉 ‘대대로 벼슬한 집안’이라는 뜻도 있다. 역자는 문맥에 의거하여 ‘세족’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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