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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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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高帝 鎭東府注+① 齊書曰 “高帝, 姓蕭氏, 諱道成. 初仕宋, 以功封齊公, 竟代宋. 在位四年.”할새 虞玩之爲少府한대 躡屐造席이라 高帝 取屐視之하니 訛黑斜銳하고 蒵斷하여 以芒接之 因問
此屐已幾載오하니
玩之曰
初釋褐時 買之하니 著已三十年이니이다하다
高帝 咨嗟하고 因爲贈屐이어늘 玩之不受하다
問其故하니 答曰 公之賜 恩華俱重이로대 敝履 復不可遺니이다하다
帝稱善久之注+② 南史曰 “虞玩之, 字茂瑤, 會稽餘姚人. 少閑刀筆, 汎涉書史, 好臧否人物. 元徽中, 爲尙書右丞.”하다


2-6【 고제高帝동부東府를 다스리고 있을 때注+① ≪제서齊書≫ 〈고제본기高帝本紀 〉에 말하였다. “고제高帝소씨蕭氏이고 도성道成이다. 처음에 유송劉宋에서 벼슬하여 공적功績으로 제공齊公에 봉해졌으며 결국에 유송을 대신하였다. 4년간 재위하였다.” 당시 우완지虞玩之소부少府였는데 나막신을 신고 연석에 나왔다. 고제가 나막신을 가져다 살펴보니 색이 검게 변하고 한쪽으로 닳았으며 신발 끈이 끊어져 노끈으로 이어놓은 것이었다. 이에 고제가 물었다.
제齊 고제高帝제齊 고제高帝
“경은 이 나막신을 몇 년이나 신었는가?”
우완지가 대답하였다.
“처음 벼슬했을 때 샀으니 신은 지 이미 30년이 되었습니다.”
고제가 탄식하며 그 참에 나막신을 선물하였는데 우완지가 받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공께서 하사한 것은 은혜로 보나 영화로 보나 모두 소중합니다만, 은 다시 버려서는 안 됩니다.”
고제가 오랫동안 그를 칭찬하였다.注+② ≪남사南史≫ 〈우완지전虞玩之傳〉에 말하였다. “우완지虞玩之무요茂瑤이고, 회계會稽 여요餘姚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문장을 익혔고 서적을 널리 섭렵하였으며 인물을 품평하기를 즐겼다. 원휘元徽(473∼477) 중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었다.”


역주
역주1 쓰던 비녀 : ≪韓詩外傳≫ 권9에 나오는 고사로, 孔子의 일행이 길을 가다가 어떤 부인이 비녀를 잃어버려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공자의 제자가 위로하자 그 부인이 “없어진 비녀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을 잊지 못해 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로 ‘잃어버린 비녀’는 예전에 쓰던 물건이나 옛 정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2 해진 신 : 賈誼의 ≪新書≫ 〈諭誠〉에 나오는 고사로, 楚(春秋)나라 昭王이 吳나라와 싸우다 패하여 달아나던 중에 신발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한참을 가다 다시 돌아와 신발을 찾고는 말하기를, “어찌 신발 한 짝이 아까워서이겠는가. 그것과 더불어 나왔다가 그것과 더불어 들어가지 못함을 싫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이후 오래 같이 한 물건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인다.
역주3 遺簪 : ≪何氏語林≫에는 ‘遺’가 ‘蓍’로 되어 있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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