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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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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釋道安 俊辯하고 有髙才注+① 安傳曰 “釋道安者, 常山薄柳人, 本姓衛, 年十二作沙門. 神性聰敏, 而貌至陋. 佛圖澄甚重之. 値石氏亂, 於陸渾山修學. 爲慕容俊所逼, 乃住襄陽. 以佛法東流, 經籍錯謬, 更爲條章, 標序篇, 爲之注解. 自支道林等, 皆宗其理.” 自北來荆州하여 與習鑿齒 相見注+② 晉中興書曰 “習鑿齒, 字彦威, 襄陽人.” 道安 因自通曰
彌天 釋道安이라하니
答曰
四海 習鑿齒라하다
當時 以為名對


4-29 석도안釋道安은 언변이 뛰어나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다.注+① 〈도안화상전道安和上傳〉에 말하였다. “석도안釋道安상산常山 박류薄柳 사람으로 본성本姓이며 12세에 사문沙門이 되었다. 예지가 총명하였으나 외모는 대단히 볼품없었다. 이 그를 매우 중시하였다. 을 만나 하남성陸渾山에서 학문을 닦았고, 모용준慕容俊(전연前燕경소제景昭帝)에게 핍박을 당해 양양襄陽에 거주하게 되었다. 불법佛法이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경적經籍에 착간과 오류가 많았기에 다시 을 만들고 편목篇目을 세우고 설명하였으며 주해注解를 달았다. 지도림支道林 등은 모두 그의 이론을 으뜸으로 여겼다.” 북쪽에서 형주荆州로 와서 습착치習鑿齒와 서로 만났을 때에注+②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습착치習鑿齒언위彦威이고 양양襄陽 사람이다.” 석도안이 자신을 소개하였다.
“〈명성이〉 세상천지에 가득한 석도안입니다.”
습착치가 대답하였다.
사해四海가 다 아는 습착치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이를〉 훌륭한 대답으로 여겼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佛圖澄 : 竺佛圖澄으로도 쓴다. 서역 출신의 승려이다. 9살 때 중세 인도의 Udyāna라는 나라에서 출가하였다. 두 차례 Kasmira에 가서 불법을 배웠다. 晉 懷帝의 永嘉 4년(310)에 洛陽에 왔는데 당시 이미 79세였다. 식견과 학식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며, 유명한 제자로는 法首․法祚․法常․法佐․僧慧․道進․道安․僧朗․竺法汰․竺法和․竺法雅와 비구니 安令首 등이 있다.
역주3 石氏의 亂 : 석씨는 石勒․石虎 등을 가리킨다. 석호는 五胡十六國의 後趙의 3대 皇帝로 石勒의 조카이다. 석륵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 石弘이 뒤를 잇고 석호가 재상이 되었는데, 延熙 元年(334)에 석호가 석홍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역주4 和上 : 梵語 upādhyāya에서 나왔다. 덕이 높은 명망 있는 출가인을 가리킨다. 和尙․和社․殟社․鶻社․烏社로도 쓴다.
역주5 (自)[目] : 저본에는 ‘自’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何氏語林≫에 의거하여 ‘目’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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