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3 【
보補】
범충선范忠宣(
범순인范純仁)이
영주永州로 유배를 갔는데, 〈그의〉 부인은 〈일이〉 순조롭지 않으면
注+① 〈범충선행장范忠宣行狀〉에 말하였다. “〈범충선의〉 부인 왕씨王氏는 천장각대제天章閣待制 왕질王質의 딸이다.” 그때마다
장돈章惇에게 욕을 하였다.
注+② ≪송사宋史≫ 〈장돈열전章惇列傳〉에 말하였다. “장돈은 자字가 자후子厚로, 건주建州 포성浦城 사람이다.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박학다식하며 문장을 잘 지었다. 한번은 소식蘇軾과 함께 남산南山에서 유람할 때 선유담仙遊潭에 이르렀는데, 아래로 만 길 낭떠러지이고 그 위에 나무가 걸쳐 있었다. 장돈은 평상시의 걸음걸이로 그곳을 지나 붓에 먹을 적셔 절벽에 글씨를 썼는데 안색에 동요가 없었다. 소식이 ‘당신은 이후에 틀림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왕안석王安石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의 재주를 좋아하여 편수삼사조례관編修三司條例官으로 기용하였다. 얼마 뒤에 〈그는〉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제수되었다가 채주자사蔡州刺史로 좌천되었다. 를 비방하고, 〈이미 사망했는데〉 뒤미처 사마광司馬光 등에게 죄를 주려 하였다. 철종이 붕어한 뒤에 그의 죄를 따져 뇌주사호참군雷州司戶參軍으로 좌천시켰다.” 배가
귤주橘洲를 지날 때, 크게 비바람이 쳐서 배가 파손되어 가까스로 언덕에 이를 수 있었다. 〈범충선의 아들〉
범정평范正平이 거적을 들고
注+③ 범정평范正平은 자字가 자이子夷로, 범충선范忠宣(범순인范純仁)의 둘째 아들이다. 범충선공이 스스로 부인을 업고 〈언덕에〉 올라 민가에서 옷을 말렸는데, 공이 〈가족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