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密
은 目瞳子正方
하고 黑白明澈
注+① 隋書曰 “密, 字法主, 眞鄕公衍之從孫也. 才兼文武, 志氣雄遠, 散財養客. 後更折節, 下帷耽學. 楊玄感擧兵, 以爲謀主, 屢戰克捷, 上號魏公, 設壇卽位. 歸身於唐, 封邢國公.”이라 煬帝見之
注+② 隋書曰 “帝, 諱廣, 文帝第二子. 弑父自立, 承富強之業. 慨然慕秦皇․漢武之爲人, 窮侈極欲. 巡狩揚州, 爲宇文化及所弑.”하고 謂宇文述
注+③ 隋書曰 “宇文述, 字伯通, 代郡武川人. 周武帝時, 以父軍功起家, 拜開府. 開皇初, 拜居衛大將軍.”曰
此小兒
는 瞻視異常
하니 無令入衞
注+④ 密傳曰 “密父寬, 驍勇善戰, 幹略過人. 自周及隋, 數經將領.”하라하다
24-47 【
보補】
이밀李密은 눈동자가 정사각형이고 검은자위와 흰자위가 분명하였다.
注+① ≪수서隋書≫ 〈이밀렬전李密列傳〉에 말하였다. “이밀李密은 자字가 법주法主로, 진향군공眞鄕郡公 의 종손從孫이다. 재주는 문무를 겸비하고, 의지와 기개가 웅대하고 원대하며, 재산을 털어 식객을 길렀다. 나중에는 이전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학문에 몰두하였다. 이 군대를 일으켰을 때 그를 책사로 삼았고, 〈수隋나라와의〉 여러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스스로〉 위공魏公이라고 호칭을 높이고 단을 설치하고 즉위하였다. 〈이후에는〉 당唐나라에 귀순하여 형국공邢國公에 봉해졌다.” 〈
수隋〉
양제煬帝(
양광楊廣)가 그를 보고는
注+② ≪수서隋書≫ 〈양제기煬帝紀〉에 말하였다. “양제煬帝는 휘諱가 광廣으로, 문제文帝(양견楊堅)의 둘째 아들이다. 부친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 부강한 왕업을 계승하였다. 진秦 시황始皇과 한漢 무제武帝의 사람됨을 개연히 흠모하며, 사치를 끝없이 부리고 욕망을 한없이 추구하였다. 양주揚州를 순수巡狩하다가 에게 시해당하였다.” 우문술宇文述에게 말하였다.
注+③ ≪수서隋書≫ 〈우문술열전宇文述列傳〉에 말하였다. “우문술宇文述은 자字가 백통伯通으로, 대군代郡 무천현武川縣 사람이다. 〈북조北朝〉 북주北周 무제武帝(우문옹宇文邕) 때에 부친의 군공軍功 덕분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에 제수되었다. 〈수隋 문제文帝〉 개황開皇 연간(581~600) 초반에 거위대장군居衛大將軍에 제수되었다.”
“왼쪽 친위대에 있는 시커먼 아이는 누구인가?”
“저 아이는 눈매가 남다르니 호위대에 들이게 하지 말라.”
注+④ ≪수서隋書≫ 〈이밀렬전李密列傳〉에 말하였다. “이밀李密의 부친 이관李寬은 용맹하고 전투에 뛰어나며, 재능과 책략이 남보다 뛰어났다. 〈북조北朝〉 북주北周로부터 수隋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장령將領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