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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화羊長和(
양침羊忱)의
注+① 에 말하였다. “양침羊忱은 자字가 장화長和이다. 양도羊陶라고도 하며, 태산泰山 평양平陽 사람이다. 대대로 현귀顯貴한 집안이었다. 양침은 태부장사太傅長史ㆍ양주자사揚州刺史를 역임하였고, 시중侍中에 올랐다. 영가永嘉 5년(311)에 난리를 만나 피살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50여 세였다.” 부친
양요羊繇는 사촌지간인
태부太傅 양호羊祜와 친하게 지냈다. 벼슬이
차기연車騎掾에 이르렀을 때 일찍 죽어 양장화 형제 5인은 어려서
注+② ≪양씨보羊氏譜≫에 말하였다. “양요羊繇는 자字가 감보堪甫이고, 태산泰山 사람이다. 조부 양속羊續은 한漢나라 태위太尉에 임명되었는데, 나아가지 않았다. 부친 양비羊祕는 경조태수京兆太守였다. 양요는 차기연車騎掾을 역임하였고, 악국정樂國禎의 딸에게 장가들어 양병羊秉ㆍ양흡羊洽ㆍ양식羊式ㆍ양량羊亮ㆍ양침羊忱 다섯 아들을 두었다.” 부친을 여의게 되었다. 양호가 와서 곡할 때 상을 치르는 양장화의 용모와 처신이 완연히 어른스러움을 보고는 감탄하여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