敬和
는 棲託好佳
注+① 中興書曰 “王洽, 字敬和, 導第三子. 於公子中最知名, 與潁川荀羨俱有美稱. 累遷吳郡內史, 爲士民所懐. 徵拜中領軍, 尋加中書令, 不拜, 年二十六而卒.”라하다
16-12 사공謝公(사안謝安)이 왕우군王右軍(왕희지王羲之)에게 보낸 서신에서 말하였다.
“
왕경화王敬和(
왕흡王洽)가 〈몸과 마음을〉 두는 곳은 참으로 훌륭하다.
注+①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왕흡王洽은 자字가 경화敬和이고 왕도王導의 셋째 아들이다. 공자公子들 가운데서 가장 이름이 알려졌는데, 영천潁川의 순선荀羨과 함께 유명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오군내사吳郡內史에 이르렀는데 사대부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조정에 불려가 중령군中領軍에 제수되었고 마침내 중서령中書令에 더해졌지만 임명받지 못하고 26세로 죽었다.”왕희지王羲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