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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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謝元正 幼便聰慧注+① 陳書曰 “謝貞, 字元正, 陳郡陽夏人. 晉太傅安九世孫, 父藺以孝義稱. 貞少有至性. 仕始興王錄事參軍.” 八歳 爲春日閒居詩하니 尚書王筠注+② 梁書曰 “王筠, 字元禮, 瑯琊臨沂人. 祖僧䖍齊司空, 父揖大中大夫. 筠年十六, 爲芍藥賦, 甚美. 官至太子詹事.” 奇其有佳致하여 謂所親曰
此兒方當大成이라 至如風定花猶落하얀 乃追步惠連矣注+③ 南史曰 “惠連十歲能屬文.” 鍾嶸詩品曰 “小謝才思富捷. 恨其蘭玉早凋. 故未騁.”라하니라


22-27 【사원정謝元正(사정謝貞)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注+① ≪진서陳書≫ 〈사정전謝貞傳〉에 말하였다. “사정謝貞원정元正이고,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이다. 진태부晉太傅 사안謝安의 9세손이고, 부친 사린謝藺은 효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으로 칭송되었다. 사정은 어려서부터 탁월한 성품을 지녔다. 시흥왕始興王(진숙릉陳叔陵)의 녹사참군錄事參軍을 지냈다.” 8살 때 〈봄날 한가히 지내면서〉라는 시를 지었는데, 외종숙인 상서 왕균王筠注+② ≪양서梁書≫ 〈왕균전王筠傳〉에 말하였다. “왕균王筠원례元禮이고, 낭야瑯琊 임기臨沂 사람이다. 조부 왕승건王僧䖍나라의 사공司空이었고, 부친 왕읍王揖대중대부大中大夫였다. 왕균은 16살 때 〈작약부芍藥賦〉를 지었는데, 매우 훌륭하였다. 관직은 태자첨사太子詹事에 이르렀다.” 그 시에 뛰어난 운치가 있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 친한 이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앞으로 대성할 것입니다. ‘바람 고요한데 꽃은 여전히 떨어지네’와 같은 구절은 사혜련謝惠連을 능가하지요.”注+③ ≪남사南史≫ 〈사혜련전謝惠連傳〉에 말하였다. “사혜련은 10살 때 문장을 지을 수 있었다.”
에 말하였다. “소사小謝(사혜련)는 재능이 풍부하고 민첩하였다. 그런 인재가 일찍 죽었으니,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역주
역주1 鍾嶸의 ≪詩品≫ : 鍾嶸은 字가 仲偉이고 魏(三國)나라 太尉였던 鍾繇의 11대손으로, 易學에 정통하였으며 벼슬은 梁(南朝)나라 晉安王의 記室을 지냈다. ≪詩品≫의 原名은 ≪詩評≫인데 唐代에 ≪시품≫으로 바뀌었다. 중국 제일의 詩論 전문서로,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는데 漢魏 이래 103인의 五言詩를 우열에 따라 上․中․下 3品으로 분류하였으며 ≪文心雕龍≫과 竝稱되는 뛰어난 저술이다.
역주2 從舅 : 어머니의 종형제를 말한다. 謝貞의 어머니는 王氏이다.
역주3 長轡 : 轡는 말고삐로, 이것이 길어야 말 수레를 끌기에 편하고 말을 통제하기 쉬워 먼 길을 가는데 필수적인 장비이다. 여기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을 긴 말고삐를 가진 것에 비유하였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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