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왕평자王平子(왕징王澄), 호무언국胡毋彦國(호무보지胡毋輔之) 등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대로 처신하는 것을 통달한 것이라 여겼으니 어떤 이는 나체로 있는 자도 있었다.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왕징王澄은 자字가 평자平子이고, 식견識見이 높았으며,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냈다.” 하였다. ≪영가류인명永嘉流人名≫에 “호무보지胡毋輔之는 자字가 언국彦國이고 태산泰山봉고奉高 사람이며, 상주자사湘州刺史를 지냈다.” 하였다. 왕은王隱의 ≪진서晉書≫에 말하였다. “위魏나라 말에 완적阮籍은 술을 좋아하고 방달放達하였으며 머리를 드러내 산발하고 나체로 지내며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그 후 귀족의 자제인 원첨阮瞻․왕징王澄․사곤謝鯤․호무보지胡毋輔之의 무리가 모두 완적을 추종하는 것이 대도大道의 근본을 얻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두건을 쓰지 않고 의복을 벗어버려 추악함을 드러내 금수와 같이 되었다. 그런 행위가 심한 자는 통通이라 하고, 그보다 못한 자는 달達이라 하였다.”악광樂廣이 비웃으며 말하였다.
“명교名敎 안에도 자연히 즐거운 경지가 있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한단 말인가.”注+② 악광樂廣은 따로 보인다.
역주1嗣宗(阮籍)은……도피하였다 :
韓愈의 〈送王秀才序〉에 “阮籍과 陶潛의 詩를 읽고서야, 저들이 비록 좌절하여 세상과 접촉하려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마음을 平靜하게 지니지 못하여, 혹 사물의 是非에 감정이 폭발하면 이에 〈술에〉 의탁해 〈醉鄕으로〉 도피한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及讀阮籍陶潛詩 乃知彼雖偃蹇不欲與世接 然猶未能平其心 或爲事物是非相感發 於是有託而逃焉者也]”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