瑯琊王元長이 才名甚盛한대 欲與徐勉으로 相識하여 每托人召之라 徐謂人曰
俄而元長及禍
하니 時人服其幾鑒
注+① 蕭子顯齊書曰 “王融, 字元長, 瑯琊人. 神明警惠, 博涉有文才. 爲中書郞. 疾, 融先欲立竟陵王子良. 及卽位, 下廷尉獄, 賜死.”이라
14-30 【보補】 낭야왕瑯琊王 원장元長(왕융王融)이 재주와 명성이 매우 높았는데, 서면徐勉과 교제하기를 원하여 매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그를 부르곤 하였다. 서면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
왕랑王郞(왕융)은 명성은 높으나
가볍게 옷자락을 떨치며 만나기 어렵다.”
얼마 있다가 원장이 화를 당하자 당시 사람들이 그의
감식안鑑識眼에 탄복하였다.
注+① 소자현蕭子顯의 ≪제서齊書≫ 〈왕융전王融傳〉에 말하였다. “왕융王融은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낭야瑯琊 사람이다. 정신이 기민하고 지혜로웠으며, 박식하고 문재文才가 있었다. 중서랑이 되었을 때 무제武帝가 병드니, 왕융이 먼저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을 세우려 하였다. 울림왕鬱林王(소소업蕭昭業)이 왕융을 매우 미워하여 즉위한 뒤에 정위옥廷尉獄에 내려 처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