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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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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眞長 標寄淸遠이라 小時 諸人 比之袁羊하니 劉喜하여 還告其母 母有識鑒한대 謂之曰
非汝比 勿受之하라하다
又有方之范汪者하니 劉復喜한대 母又不聽이라 眞長 年德轉升하니 論者比之荀粲注+① 范汪別傳曰 “范汪, 字玄平, (頴)[潁]陽人. 左將軍略之孫. 少有不常之志, 通敏多識, 博涉經籍, 致譽於時, 歷吏部尙書.” 晉書曰 “汪, 少孤, 六歲過江, 依外家新野庾氏, 王澄見而奇之. 及長好學, 外氏家貧, 無以資給, 汪乃廬於園中, 布衣蔬食, 燃薪寫書, 誦讀亦遍, 博學多通. 善談名理.”이라


14-23 【유진장劉眞長(유담劉惔)은 청원淸遠한 것에 뜻을 두었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에 빗대자 유진장이 기뻐하며 그 모친에게 돌아가 고하였다. 모친은 감식안鑑識眼이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였다.
“이는 네가 견줄만한 사람이 아니니 받아들이지 말라.”
또 그를 에 비교하는 자가 있자 유진장이 다시 기뻐하였는데, 모친이 또 허락하지 않았다. 후에 유진장이 점점 나이가 많아지고 덕이 높아지게 되자 평론하는 자들이 그를 에 빗댔다.注+① 〈범왕별전范汪別傳〉에 말하였다. “범왕范汪현평玄平이고, 영양潁陽 사람이다. 좌장군左將軍 범략范略의 손자이다. 젊어서부터 범상치 않은 뜻을 지녔고, 통달하고 민첩하였으며 박식하였고 경적經籍을 두루 섭렵하여 당시에 명성이 높았다. 이부吏部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진서晉書≫ 〈범왕전范汪傳〉에 말하였다. “범왕范汪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6세 때 장강長江을 건너가 외가인 신야유씨新野庾氏에 의탁하였는데, 왕징王澄이 그를 보고 특별하게 여겼다. 성장하여서는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외가가 가난하여 그를 돌보아 줄 수 없자, 범왕이 마침내 동산에서 기거하면서 베옷을 입고 채소를 먹었으며, 땔감을 태워 〈그 불빛으로〉 책을 베꼈고, 독서 또한 폭넓게 하여 많은 분야에 박학다식하였다. 에 대한 담론에 뛰어났다.


역주
역주1 袁羊(袁喬) : ?~?.字는 彥升이고, 어릴 때 이름은 羊이다. 東晉의 官員이자 將領으로, 환온이 蜀을 평정한 뒤 湘西伯ㆍ益州刺史를 지냈다. 박학하고 文才가 있었다.(≪晉書≫ 〈袁喬傳〉)
역주2 范汪 : 308~372. 字는 玄平이고 南阳 顺阳 사람으로, 东晋의 大臣이며 醫學에 정통한 것으로 이름 났다. 东阳太守를 지냈으므로 范东阳으로도 부르며 郡에 재직할 때 학교를 크게 일으키고 惠政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晉書≫ 〈范汪傳〉)
역주3 荀粲 : 209~237. 字는 奉倩이고, 荀彧의 아들이다. 당시의 전형적인 名士이고, 玄学家로 추앙 받았다.
역주4 名理 : 보편적으로 ‘名稱과 道理’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魏晉시대에 淸談家들이 사물의 명칭, 이치의 是非ㆍ同異를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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