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眞長은 標寄淸遠이라 小時에 諸人이 比之袁羊하니 劉喜하여 還告其母라 母有識鑒한대 謂之曰
又有方之范汪者
하니 劉復喜
한대 母又不聽
이라 後
에 眞長
이 年德轉升
하니 論者比之荀粲
注+① 范汪別傳曰 “范汪, 字玄平, (頴)[潁]陽人. 左將軍略之孫. 少有不常之志, 通敏多識, 博涉經籍, 致譽於時, 歷吏部尙書.” 晉書曰 “汪, 少孤, 六歲過江, 依外家新野庾氏, 王澄見而奇之. 及長好學, 外氏家貧, 無以資給, 汪乃廬於園中, 布衣蔬食, 燃薪寫書, 誦讀亦遍, 博學多通. 善談名理.”이라
14-23 【
보補】
유진장劉眞長(
유담劉惔)은
청원淸遠한 것에 뜻을 두었다.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에 빗대자 유진장이 기뻐하며 그 모친에게 돌아가 고하였다. 모친은
감식안鑑識眼이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였다.
“이는 네가 견줄만한 사람이 아니니 받아들이지 말라.”
또 그를
에 비교하는 자가 있자 유진장이 다시 기뻐하였는데, 모친이 또 허락하지 않았다. 후에 유진장이 점점 나이가 많아지고 덕이 높아지게 되자 평론하는 자들이 그를
에 빗댔다.
注+① 〈범왕별전范汪別傳〉에 말하였다. “범왕范汪은 자字가 현평玄平이고, 영양潁陽 사람이다. 좌장군左將軍 범략范略의 손자이다. 젊어서부터 범상치 않은 뜻을 지녔고, 통달하고 민첩하였으며 박식하였고 경적經籍을 두루 섭렵하여 당시에 명성이 높았다. 이부吏部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진서晉書≫ 〈범왕전范汪傳〉에 말하였다. “범왕范汪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6세 때 장강長江을 건너가 외가인 신야유씨新野庾氏에 의탁하였는데, 왕징王澄이 그를 보고 특별하게 여겼다. 성장하여서는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외가가 가난하여 그를 돌보아 줄 수 없자, 범왕이 마침내 동산에서 기거하면서 베옷을 입고 채소를 먹었으며, 땔감을 태워 〈그 불빛으로〉 책을 베꼈고, 독서 또한 폭넓게 하여 많은 분야에 박학다식하였다. 에 대한 담론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