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은 挺義之標하고 庾는 作民之望하니 方響則金聲이요 比德則玉亮이라하다
庾公
이 聞賦成
에 求看
하고 兼贈貺之
하니 闡
이 更改望爲儁
하고 以亮爲潤云
注+① 中興書曰 “闡, 字仲初, (頴)[潁]川人, 太尉亮之族也. 少孤, 九歲便能屬文. 遷散騎侍郎․領大著作. 爲揚都賦, 邈絶當時. 五十四卒.”하다
9-7
유천庾闡이 처음 〈
부賦〉를 지었을 때,
온교溫嶠와
유량庾亮을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온교는 의리의 표상을 세우고 유량은 백성의 희망[
망望]이 되니,
”
유공庾公(유량)이 〈양도부〉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보여주기를 원하면서 아울러 선물을 주니, 유천이 ‘희망[
망望]’을 ‘준걸[
준儁]’로 고치고 ‘광택[
량亮]’을 ‘윤택[
윤潤]’으로 수정하였다.
注+①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유천庾闡은 자字가 중초仲初로, 영천潁川 사람이며, 태위太尉 유량庾亮의 친족이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9세에도 글을 지을 수 있었다. 산기시랑散騎侍郎과 영대저작領大著作(영저작랑領著作郞)이 되었다.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당시에 가장 훌륭한 작품이었다. 54세에 세상을 떠났다.”
注
◦ 유진옹劉辰翁:아마 온교溫嶠와 유량庾亮이 모두 예전에 양주楊州를 다스린 적이 있었던 듯하다.
注
◦ 유신옹劉辰翁:유공庾公(유량庾亮)의 이름 ‘량亮’을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윤潤’으로 고치고〉 아울러 이웃 구절의 운자韻字 〈‘망望도 준儁으로〉 수정하였다.
注
◦ 유진옹劉辰翁:〈유천庾闡은〉 아첨을 떠는 허수아비와 같은 짓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