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太傅
가 盤桓東山時
에 與孫興公諸人
으로 汎海戱
注+① 中興書曰 “安元居會稽, 與支道林․王羲之․許詢共遊處. 出則漁弋山水, 入則談說屬文, 未嘗有處世意也.”한대 風起浪涌
하니 孫王諸人
은 色竝遽
하여 便唱使還
이어늘 太傅
는 神情方王
하여 吟嘯不言
이라 舟人
은 以公貌閑意說
이라하여 猶去不止
라 旣風轉急浪猛
에 諸人
이 皆諠動不坐
하니 公徐云
衆人이 卽承響而回라 於是에 審其量足以鎭安朝野라
13-8
사태부謝太傅(
사안謝安)가
에서 은거할 때,
손흥공孫興公(
손작孫綽) 등 여러 인사들과 바다에 배를 띄워 유람하였다.
注+①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에 말하였다. “사안謝安은 원래 회계會稽에 살았는데, 지도림支道林․왕희지王羲之․허순許詢과 함께 유람하였다. 〈집을〉 나서면 산에서 사냥하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집에〉 들어와서는 담론하고 문장을 지었으니, 한번도 의 마음을 두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세게 치자 손흥공과
왕희지王羲之 등 사람들은 안색이 모두 다급하여 돌아가게 하라고 즉시 소리쳤으나, 사태부는 마음이 한창 고조되어 읊조리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舟人(뱃사공)은
사공謝公(사태부)이 모습은 한가롭고 마음은 즐겁다는 이유로 여전히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서 파도가 맹렬해지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시끌벅적하게 동요하면서 앉아 있지 못하자, 사공이 천천히 말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그의 국량局量이 조정과 재야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注
◦ 유응등劉應登:〈어떤 판본에는 본문 색병거色竝遽의〉 ‘병竝’이 ‘변變’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