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武帝時에 諸弟가 皆無寵이러니 嘗於御坐曲宴에 武陵이 因醉伏地하여 以貂抄肉柈하니 帝笑曰
陛下
는 何愛其羽毛
하고 而疎其骨肉
注+① 南齊書曰 “武陵昭王曄, 高帝第五子也. 母以罪誅, 曄年四歲, 思慕不異成人. 高帝雖爲方伯, 而居處甚貧, 諸子學書無紙筆. 曄常以指畫空中學字, 遂工篆法. 性剛穎雋出. 武帝卽位, 歷中書令․祠部尙書. 或言曄有非常之相, 以此自負, 故無寵, 未嘗處方岳.”이니잇가
20-14 【
보補】
제齊 무제武帝(
소색蕭賾) 때에 여러 동생들 모두 〈무제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한번은 어전의 작은 연회 자리에서
무릉왕武陵王(
소엽蕭曄)이 술에 취해 바닥에 엎드려 담비 가죽으로 고기 쟁반을 잡으니, 무제가 웃으며 말했다.
제齊 무제武帝(소색蕭賾)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담비 가죽의〉 털은 아끼고
골육骨肉은 소원하게 대하시는지요?”
注+① ≪남제서南齊書≫에 말했다. “무릉소왕武陵昭王 소엽蕭曄은 고제高帝(소도성蕭道成)의 다섯째 아들이다. 모친이 죄를 입어 주살당할 때 소엽은 나이가 5세였는데, 모친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른과 다르지 않았다. 고제高帝는 〈제위에 오르기 전〉 비록 방백方伯이었지만 생활이 매우 궁핍하여 자식들이 글을 배울 때 종이와 붓도 없었다. 소엽은 늘 손가락으로 공중에 글자를 쓰면서 서법을 공부하였고 마침내 전서篆書에 뛰어나게 되었다. 성품은 강직하고 영특하였다. 무제武帝가 즉위하고 나서 중서령中書令․상서尙書를 거쳤다. 어떤 무당이 소엽의 관상이 범상치 않다는 말을 했는데 〈소엽은〉 이를 가지고 자부했기 때문에 〈무제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한 번도 방백이 되어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