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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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房太尉言
見紫芝眉宇 使人名利之心都盡注+① 劉昫唐書曰 “元德秀, 字紫芝, 河南人. 性純朴無緣飾, 動師古道. 父爲延州刺史. 德秀少孤貧, 事母以孝聞. 開元中, 遊京師, 不忍離親, 每行則自負板輿, 與母詣長安. 母亡, 廬於墓所, 食無鹽酪, 藉無茵席, 刺血畫像寫佛經, 久之. 以孤幼牽於祿仕, 授邢州南和尉, 佐治有惠政, 召補龍武參軍. 終魯山令.”이라하다


16-49 【방태위房太尉(방관房琯)가 말했다.
원자지元紫芝(원덕수元德秀)의 용모容貌를 보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注+유후劉昫의 ≪구당서舊唐書≫에 말했다. “원덕수元德秀자지紫芝하남河南 사람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꾸밈이 없었으며 항상 옛 법도를 본받았다. 부친은 연주자사延州刺史였다. 원덕수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모친을 효성으로 모셔 〈이름이〉 알려졌다. 개원開元 연간(713~741) 경사京師에 다녔는데 차마 모친과 떨어지지 못해 갈 때마다 직접 를 메고 모친과 함께 장안長安에 갔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묘소에 여막을 짓고 소금과 식초도 없이 식사를 했고 자리에는 요와 방석도 없었으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어 〈모친의〉 을 그리고 불경佛經을 베껴 썼다. 오랫동안 나이 어린 고아라는 이유로 오래도록 에 제재를 받았는데, 형주邢州남화위南和尉에 제수되어서는 보좌하며 백성들에게 혜택이 가는 정치를 펼쳤고 〈도성으로〉 불려와 용무참군龍武參軍보임補任되었다. 노산령魯山令으로 있다가 죽었다.”
원덕수元德秀원덕수元德秀


역주
역주1 板輿 : 노인을 편히 모실 수 있도록 푹신한 부들방석을 깐 가마로, 주로 지방관으로서 늙은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는 것을 비유한다.
역주2 祿仕 : 봉록을 받아 살기 위해 벼슬에 나아가는 것이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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