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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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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緒․王國寳相爲脣齒하여權要注+① 王氏譜曰 “緖, 字仲業, 太原人. 祖延, 父乂, 撫軍.”
晉安帝紀曰 “緖爲會稽王從事中郞, 以佞邪親幸. 王珣․王恭惡國寳與緖亂政, 與殷仲堪克期同擧, 內匡朝廷. 及恭表至, 乃斬緖以說諸侯. 國寳, 平北將軍坦之第三子. 太傅謝安, 國寳婦父也, 惡而抑之不用. 安薨, 相王輔政, 遷中書令, 有妾數百. 從弟緖有寵於王, 深爲其說, 國寶權動內外. 王珣․王恭․殷仲堪爲孝武所待, 不爲相王所眄. 恭抗表討之, 車胤又爭之. 會稽王旣不能拒諸侯兵, 遂委罪國寶, 付廷尉賜死.”
러니 王大不平其如此하여 乃謂緒曰
汝爲此歘歘하니 曾不慮獄吏之爲貴乎注+② 史記曰 “有上書告漢丞相欲反, 文帝下之廷尉. 勃旣出, 歎曰 ‘吾嘗將百萬之軍, 安知獄吏之爲貴也.’”아하다


20-6 〈사촌동생인〉 왕서王緒와 〈사촌형인〉 왕국보王國寳는 입술과 이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로 함께 권력을 주물렀다.注+① ≪왕씨보王氏譜≫에 말했다. “왕서王緖중업仲業으로 태원太原 사람이다. 조부는 왕연王延이며 부친 왕예王乂무군장군撫軍將軍이었다.”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했다. “왕서는 회계왕會稽王(사마도자司馬道子)의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어 아첨과 간사함으로 총애를 받았다. 왕순王珣왕공王恭왕국보王國寳와 왕서가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해 은중감殷仲堪과 함께 기일을 정해 같이 거사하여 안으로 조정을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왕공의 표문表文이 이르자 〈안제安帝는〉 이에 왕서를 참수하여 제후들을 달랬다.
왕국보는 평북장군平北將軍 왕탄王坦의 셋째 아들이다. 태부太傅 사안謝安은 왕국보의 장인인데 그를 싫어하여 물리치고 쓰지 않았다. 사안이 죽고 (사마도자)이 국정을 보좌하게 되자 〈왕국보는〉 중서령中書令으로 옮겼으며 수백 명의 첩을 두었다. 종제從弟인 왕서는 상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왕국보를〉 위해 좋은 말을 많이 하여 왕국보의 권세가 조정의 안팎에 진동하게 되었다. 왕순王珣왕공王恭은중감殷仲堪효무제孝武帝(사마요司馬曜)에게 대우를 받았으나 상왕의 눈에는 들지 못했다. 왕공이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왕국보의 죄를 성토하고 차윤車胤도 간쟁하였다. 회계왕은 제후들의 군대를 막을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왕국보에게 죄를 떠넘기고 에게 회부하여 사사賜死하였다.”
〈왕국보의 동생인〉 왕대王大가 그들의 이런 행동에 불만을 품고 왕서에게 말했다.
“너는 이렇게 경거망동하는데 注+② ≪사기史記≫에 말했다. “나라 승상丞相(주발周勃)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상서上書가 있자 문제文帝정위廷尉에게 내려 처리하게 하였다. 주발이 〈감옥에서〉 나와서는 탄식하며 ‘내 일찍이 백만 대군을 거느렸는데 어찌 옥리獄吏가 존귀한 줄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相王 : 宰相이면서 王으로 封해진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司馬道子가 會稽王이면서 재상이므로 ‘상왕’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2 廷尉 : 관직명이다. 戰國時代 秦나라에서 처음 설치하였으며 ‘大理’라고도 부른다. 刑獄을 관장하는 최고의 관원이다.
역주3 獄吏가……없는가 : 이 말은 漢나라 周勃의 故事에서 나왔다. 周勃이 丞相의 직임에서 물러나 封國으로 돌아갔다가 반란을 꾀한다는 무고를 당하는 바람에 廷尉에게 심문 받고 獄吏에게 능욕을 당하였다. 주발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내 일찍이 백만의 대군을 거느린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獄吏가 얼마나 존귀한지 어찌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史記≫ 〈絳侯周勃世家〉)
역주4 (上下)[弄] : 저본에는 ‘上下’로 되어 있으나, ≪世說新語箋疏≫에 의거하여 ‘弄’으로 바로잡았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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