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어떤 일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오직 치가郗家와 이혼한 것이 기억난다.”注+① ≪왕씨보王氏譜≫에 “왕헌지王獻之는 고평高平치담郗曇의 딸 치도무郗道茂에게 장가들었다가 나중에 이혼하였다.” 하였다. 〈왕헌지별전王獻之別傳〉에 말하였다. “왕헌지王獻之는 자字가 자경子敬이다. 조부 왕광王曠은 회남태수淮南太守였고, 부친 왕희지王羲之는 우장군右將軍이었다. 함안咸安(371∼372) 연간에 황제의 명으로
역주1道家에서는……물었다 :
후한 말에 일어난 天師道 이후 道敎의 신자는 병들었을 때 자신의 도덕상의 과오를 고백하여 쾌유를 청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王獻之 집안은 천사도를 믿었다.
역주2餘姚公主 :
東晉 简文帝의 셋째 딸 司馬道福이다. 처음에 餘姚公主에 봉해졌다가, 新安公主에 追封되었다. 桓溫의 아들 桓濟와 혼인하였다가 이혼하고 王獻之와 재혼하였다.
역주3咸(寧)[安] :
저본에는 ‘咸寧’으로 되어 있는데, 함녕(275∼279)은 西晉 武帝의 연호이므로 王獻之(348~388)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에 ≪世說音釋≫에 의거하여 東晉 簡文帝의 연호인 咸安(371~372)의 오류로 보아, ‘寧’을 ‘安’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역주4자경은……애절하였다 :
이 편지는 ≪全晉文≫ 권27과 ≪淳化閣帖≫ 권9에 실려 있다. 일명 〈奉對帖〉으로도 불린다.
역주5宋弘은……만들었으니 :
송홍은 漢 光武帝 때 관리로, 청렴하고 품행이 고상하기로 정평이 났다. 광무제의 누이 湖陽公主가 그를 배우자감으로 지목하자 광무제가 송홍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속담에, 신분이 귀하면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꾸는 것은 人之常情이 아닌가?” 하고 말하니, 송홍이 “저는 어려울 때 마음을 같이했던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고, 고락을 같이했던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혼사가 성립되지 않았다.(≪後漢書≫ 〈宋弘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