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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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丞相嘗夏月 至石頭하여 看庾公한대 庾公正料事하니 丞相云
暑可小簡之라한대
庾公曰
公之遺事 天下亦未以爲允注+① 殷羨言行曰 “王公薨後, 庾氷代相, 網密刑峻. 羨時行遇收捕者於途, 慨然歎曰 ‘丙吉問牛喘, 似不爾.’ 嘗從容謂氷曰 ‘卿輩自是網目不失, 皆是小道小善耳. 至如王公, 故能行無理事.’ 謝安石每歎詠此唱. 庾赤玉曽問羨 ‘王公治何似? 詎是所長?’ 羡曰 ‘其餘令績, 不復稱論, 然三捉三治, 三休三敗.’”이라하다


6-13 승상丞相(왕도王導)이 어느 여름날에 석두石頭에 가서 유공庾公(유빙庾氷)을 방문하였는데, 유공이 한창 정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승상이 말하였다.
“더울 때는 좀 쉬어야 합니다.”
유공이 말하였다.
“공이 정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천하 사람들도 온당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注+에 말하였다. “왕공王公(왕도王導)이 죽은 뒤 유빙庾氷이 승상을 대신하였는데 법망이 촘촘하고 형벌이 준엄하였다. 은선殷羨이 당시에 길을 가다가 죄인을 잡아가는 자를 도중에 만나자 개연히 탄식하기를 는 아마도 이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하였다. 한번은 은근하게 유빙에게 ‘경의 무리는 단지 법망이 잘못되지만 않게 하나, 모두 소도小道이고 소선小善일 뿐입니다. 왕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위無爲의 정사를 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였다. 사안석謝安石(사안謝安)이 매번 이 말을 감탄하며 외웠다. 유적옥庾赤玉(유통庾統)이 은선에게 ‘왕공의 다스림은 어떠하였습니까? 어떤 점이 뛰어났습니까?’라고 물으니 은선이 말하였다. ‘다른 훌륭한 업적은 더 거론할 것이 없으나, 세 번 죄인을 잡아오면[삼착三捉] 세 번 용서해주고[삼휴三休] ’”


역주
역주1 殷羨言行 : 東晉 때 사람인 殷羨(?~?)이 편찬한 책인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은선은 字가 洪喬이고 陳郡 長平 사람으로 관직이 光祿勳에 이르렀다.(≪晉書≫ 〈殷浩傳〉)
역주2 丙吉이……정사 : 병길이 漢나라의 승상이 되었을 때, 길에서 사람들이 싸워 死傷者가 생겼는데도 그대로 지나쳤으나, 소가 헐떡이는 것을 보고는 그 소가 몇 리나 걸어왔는지를 물었다. 아전이 병길의 질문이 일의 경중에 맞지 않다고 여겨 그 이유를 묻자, 병길이 사람들간의 싸움은 담당 관리가 있으므로 재상이 물을 일이 아니고, 소가 헐떡이는 것은 계절의 기후가 조화를 잃은 것이므로 陰陽의 조화를 맡은 三公, 즉 자신의 책임이라 여겨 물은 것이라 답하였다.(≪後漢書≫ 〈丙吉傳〉) 여기서는 승상은 小事에 집착하지 말고 大體에 힘써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3 세……그르쳤다 : 원문은 ‘三捉三治 三休三敗’인데, ‘捉’은 죄인을 잡는 것이고, ‘休’는 용서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王導가 無爲의 정사를 하였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世說音釋≫)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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