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上
이 以朝廷無事
니 北門鎻鑰
은 非準
이면 不可
注+① 寇萊公遺事曰 “公諱準, 字平仲, 華州人. 太宗幸魏, 公年十六, 以父陷蕃, 上書行在, 辭色激昻, 擧止無畏. 上壯之, 命有司記姓名. 後二年, 進士及第, 寖以貴顯.”라하니이다
5-19【보補】구래공寇萊公(구준寇準)이 대명부大名府를 진수鎭守하고 있을 때 북쪽(거란)의 사신이 이르러 구래공에게 말했다.
“상공相公께서는 명망이 높으신데 무슨 까닭에 중서성中書省에 계시지 않으십니까?”
“주상께서 조정에는 일이 없으니 북방의 방비는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注+① 에 말하였다. “공公의 휘諱는 준準이고 자字는 평중平仲으로 화주華州 사람이다. 송宋 태종太宗(조광의趙匡義)이 위주魏州에 행행行幸했을 때 공은 16세로 부친이 번진蕃鎭에 묻혀있다고 행재소行在所에 글을 올렸는데 언사와 안색이 격앙되었고 행동거지에 두려움이 없었다. 황상이 이를 장하게 여겨 유사有司에게 성명을 기록해두게 하였다. 2년 뒤에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였고 점차 지위가 높아졌다.”구준寇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