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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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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戎 目阮文業하되
淸倫하고 有鑒識하니 以來 未有此人注+① 杜篤新書曰 “阮武, 字文業, 陳留尉氏人. 父諶, 侍中. 武, 闊達博通, 淵雅之士.” 陳留志曰 “武, 魏末太守. 族子籍 未知名, 武見而偉之, 以爲勝己. 知人多此類. 著書十八篇, 謂之阮子. 終於家. 郭泰友人宋子俊, 稱泰‘自漢元以來, 未有林宗之匹.’”이라하다
【頭註】
劉云 “淸倫亦不成語.”


15-16 왕융王戎원문업阮文業(원무阮武)을 품평하였다.
하고 감식안이 있으니, 나라 초 이후로 이런 사람은 없었다.”注+에 말하였다. “원무阮武문업文業이고, 진류陳留 위지尉氏 사람이다. 부친 원심阮諶시중侍中이었다. 완무는 성격이 활달하고 박식하며 통달하였고 진중하고 고아한 선비였다.”
에 말하였다. “완무는 나라 말에 청하태수淸河太守를 지냈다. 조카인 완적阮籍이 나이가 어리고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었는데, 완무가 보고서 훌륭하다고 여겨 자기보다 낫다고 하였다. 그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18편의 저서가 있는데 ≪원자阮子≫라고 하였다. 집에서 죽었다. 곽태郭泰의 친구인 이 곽태를 칭찬하기를, ‘한나라 초 이후로 임종林宗(곽태)에 필적할만한 사람이 아직 없다.’ 하였다.”
두주頭註
유진옹劉辰翁:‘청륜淸倫하다’는 말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있으나, 이 일화는 ≪何氏語林≫이 아닌 ≪世說新語≫에 있으므로 ‘補’를 삭제하였다.
역주2 淸倫 : ≪論語≫ 〈微子〉에서 공자가 柳下惠와 少連을 評하여 “말이 調理에 맞으며 행실이 思慮에 맞았다.[言中倫 行中慮]” 하였고, 虞仲과 夷逸을 평하여 “몸은 깨끗하게 지켰고 벼슬하지 않음은 權道에 맞았다.[身中淸 廢中權]”라고 한 것을 가지고 추정해보자면, 阮武가 몸은 깨끗하게 지키고 말은 조리에 맞았음을 아울러 지칭한 것인 듯하다.
역주3 杜篤의 ≪杜氏新書≫ : 일명 ≪篤論≫이라고도 한다. 東漢 末年부터 京兆 杜氏 6대인 杜畿ㆍ杜恕ㆍ杜理ㆍ杜寬ㆍ杜預ㆍ杜錫ㆍ杜斌ㆍ杜乂와 陳留 阮武의 언론ㆍ생활ㆍ혼인ㆍ관직 등에 대해 기술하였다. 作者인 杜篤에 대해서는 立傳되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京兆 杜氏의 族人으로 추정할 뿐이다. 裴松之가 陳壽의 ≪三國志≫ 注를 낼 때 이 책의 내용을 다수 인용하였다.
역주4 陳留志 : ≪隋書≫ 〈經籍志〉에 “15卷이며 東晉의 剡令 江敞이 撰”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舊唐書≫에는 江徵 撰 ≪太平御覽≫에는 江微 撰으로 나온다.
역주5 宋子俊 : ≪後漢紀≫ 〈孝靈皇帝紀 上〉에 郭泰가 한 고을에 사는 字가 雋인 宋仲이라는 자와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에 근거하여 宋子俊을 宋仲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하나, 확신할 수 없어 원문대로 번역하였다.
역주6 漢元 : 漢初이다.(≪資治通鑑綱目≫ 〈漢平帝〉 注)
역주7 (河淸)[淸河] : 저본에는 ‘河淸’으로 되어 있으나, ≪太平御覽≫ 卷513 〈宗親部〉 등에 의거하여 ‘淸河’로 바로잡았다.
역주8 總角 : 머리털을 모두 모아 양쪽에 뿔[角]같이 상투를 만든 것을 말한다. 고대에 兒童들이 하던 머리 형태이다. 여기서 총각 머리를 했다는 것은 王衍이 이때 소년이었음을 뜻한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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