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晏ㆍ鄧颺ㆍ夏侯玄이 竝求傅嘏交로대 而嘏終不許러니 諸人이 乃因荀粲說合之라 謂嘏曰
夏侯泰初
는 一時之傑士
로대 虛心於子
어늘 而卿
은 意懐不可
하니 交合則好成
하고 不合則致隟
라 二賢若穆
이면 則國之休
리니 此藺相如所以下廉頗也
注+① 史記曰 “相如, 以功大拜上卿, 位在廉頗右. 頗怒, 欲辱之, 相如每稱疾, 望見引車避匿, 其欲去之, 相如曰 ‘夫以秦王之威, 而吾廷叱之, 何畏廉將軍哉! 顧秦彊趙弱, 秦以吾二人故, 不敢加兵於趙. 今兩虎鬪, 勢不俱生, 吾以公家急而後私讐也. 頗聞謝罪.”라하니
夏侯泰初는 志大心勞하여 能合虛譽하니 誠所謂利口覆國之人이요 何晏ㆍ鄧颺은 有爲而躁하고 博而寡要하며 外好利而內無關籥하고 貴同惡異하며 多言而妬前이라 多言이면 多釁하고 妬前이면 無親하니 以吾觀之컨대 此三賢者는 皆敗德之人爾라 遠之라도 猶恐罹禍어늘 況可親之邪아라하다
後皆如其言
注+② 傅子曰 “是時, 何晏以才辯, 顯於貴戚之間, 鄧颺好交, 通合徒黨, 鬻聲名於閭閻, 夏侯玄以貴臣子, 少有重名, 皆求交於嘏, 嘏不納也. 嘏友人荀粲有淸識遠志, 然猶勸嘏結交云.”이라
注
王云 “據此傳, 藺碩先識擇交, 故當動與福會, 而別傳乃云 ‘鍾會年少, 嘏以明智交會’, 交太初, 不猶勝於交叛臣呼!’”
14-8
하안何晏ㆍ
등양鄧颺ㆍ
하후현夏侯玄이 모두
와 교제하기를 구하였으나 부하가 끝내 허락하지 않자 이들이 마침내
을 통하여 교제하도록 설득하게 하였다. 〈순찬이〉 부하에게 말하였다.
“
하후태초夏侯泰初(
하후현夏侯玄)는 당대의 걸출한 선비인데도 그대에게 마음을 비우고 대했는데도 경은 불가하다고 하는구려. 교제하여 〈뜻을〉 합치면 성공하기 좋고 합치지 않으면 불화하게 될 것이네. 두 현인이 화목하면 나라의 복이 될 것이니, 이것이
인상여藺相如가
염파廉頗에게 자신을 낮춘 이유라네.”
注+①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에 말하였다. “인상여藺相如는 공로가 컸기 때문에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는데 지위가 염파廉頗보다 위였다. 염파가 이를 분하게 여겨 그를 욕보이고자 하니, 인상여는 매번 병을 핑계대면서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멀리서 〈염파를〉 보면 수레를 돌려 피하여 숨었다. 인상여의 측근이 염파를 제거하고자 하자 그가 말하였다. ‘저 위세 있는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진秦나라는 강하고 조趙나라는 약한데, 진나라는 우리 두 사람 때문에 감히 조나라에 군대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면 형세로 볼 때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나는 나라가 위급한 것을 생각하고, 사적인 원한은 뒤로 여기는 것이다.’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사죄하였다.”
“하후태초는 뜻은 크지만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므로 헛된 명예를 구하는 데 영합할 수 있으니 실로
이다. 하안과 등양은 큰일을 하되 조급하고 박식하되 요체가 없으며, 겉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안으로 절제가 없고, 자신들과 뜻이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뜻이 다른 것을 미워하며, 말이 많고 〈자신보다 능력이〉 앞선 사람을 질투한다. 말이 많으면 다툼이 많고 앞선 사람을 질투하면 친하지 못하니, 내 관점으로 보면 이 세 사람은 모두 덕을 그르치는 사람들일 뿐이다. 멀리 해도 오히려 화를 당할까 염려되는데 더구나 친하게 지내서야 되겠는가.”
나중에 모두 그가 말한 것과 같았다.
注+② ≪부자傅子≫에 말하였다. “이때 하안何晏은 재주와 언변으로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하였고, 등양鄧颺은 교제하기를 좋아하여 도당들을 통합하는 것으로 항간에 명성이 높았으며, 하후현夏侯玄은 귀족의 자제로 젊어서부터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들 모두 부하傅嘏에게 교제를 청하였으나 부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하의 친구인 순찬荀粲은 식견이 높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었는데도 오히려 부하에게 교제를 권하였다고 한다.”
注
◦
왕세무王世懋:이
전傳에 의하면,
인석藺碩(
부하傅蝦)은 선견지명이 있어 교제할 사람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늘
복福〈있는 자〉와 만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
별전別傳〉에 ‘종회는 나이가 〈부하보다〉 적었으나, 부하는 종회가 현명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교제하였다.’ 하였으니,
태초太初(
하후현夏侯玄)와 교제하는 것이
보다 그래도 낫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