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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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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晏ㆍ鄧颺ㆍ夏侯玄 竝求傅嘏交로대 而嘏終不許러니 諸人 乃因荀粲說合之 謂嘏曰
夏侯泰初 一時之傑士로대 虛心於子어늘 而卿 意懐不可하니 交合則好成하고 不合則致隟 二賢若穆이면 則國之休리니 此藺相如所以下廉頗也注+① 史記曰 “相如, 以功大拜上卿, 位在廉頗右. 頗怒, 欲辱之, 相如每稱疾, 望見引車避匿, 其欲去之, 相如曰 ‘夫以秦王之威, 而吾廷叱之, 何畏廉將軍哉! 顧秦彊趙弱, 秦以吾二人故, 不敢加兵於趙. 今兩虎鬪, 勢不俱生, 吾以公家急而後私讐也. 頗聞謝罪.”라하니
傅曰
夏侯泰初 志大心勞하여 能合虛譽하니 誠所謂利口覆國之人이요 何晏ㆍ鄧颺 有爲而躁하고 博而寡要하며 外好利而內無關籥하고 貴同惡異하며 多言而妬前이라 多言이면 多釁하고 妬前이면 無親하니 以吾觀之컨대 此三賢者 皆敗德之人爾 遠之라도 猶恐罹禍어늘 況可親之邪아라하다
後皆如其言注+② 傅子曰 “是時, 何晏以才辯, 顯於貴戚之間, 鄧颺好交, 通合徒黨, 鬻聲名於閭閻, 夏侯玄以貴臣子, 少有重名, 皆求交於嘏, 嘏不納也. 嘏友人荀粲有淸識遠志, 然猶勸嘏結交云.”이라
【頭註】
王云 “據此傳, 藺碩先識擇交, 故當動與福會, 而別傳乃云 ‘鍾會年少, 嘏以明智交會’, 交太初, 不猶勝於交叛臣呼!’”
劉云 “名言.”


14-8 하안何晏등양鄧颺하후현夏侯玄이 모두 와 교제하기를 구하였으나 부하가 끝내 허락하지 않자 이들이 마침내 을 통하여 교제하도록 설득하게 하였다. 〈순찬이〉 부하에게 말하였다.
하후태초夏侯泰初(하후현夏侯玄)는 당대의 걸출한 선비인데도 그대에게 마음을 비우고 대했는데도 경은 불가하다고 하는구려. 교제하여 〈뜻을〉 합치면 성공하기 좋고 합치지 않으면 불화하게 될 것이네. 두 현인이 화목하면 나라의 복이 될 것이니, 이것이 인상여藺相如염파廉頗에게 자신을 낮춘 이유라네.”注+①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에 말하였다. “인상여藺相如는 공로가 컸기 때문에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는데 지위가 염파廉頗보다 위였다. 염파가 이를 분하게 여겨 그를 욕보이고자 하니, 인상여는 매번 병을 핑계대면서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멀리서 〈염파를〉 보면 수레를 돌려 피하여 숨었다. 인상여의 측근이 염파를 제거하고자 하자 그가 말하였다. ‘저 위세 있는 어찌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나라는 강하고 나라는 약한데, 진나라는 우리 두 사람 때문에 감히 조나라에 군대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면 형세로 볼 때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나는 나라가 위급한 것을 생각하고, 사적인 원한은 뒤로 여기는 것이다.’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사죄하였다.”
그러자 부하가 말하였다.
“하후태초는 뜻은 크지만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므로 헛된 명예를 구하는 데 영합할 수 있으니 실로 이다. 하안과 등양은 큰일을 하되 조급하고 박식하되 요체가 없으며, 겉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안으로 절제가 없고, 자신들과 뜻이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뜻이 다른 것을 미워하며, 말이 많고 〈자신보다 능력이〉 앞선 사람을 질투한다. 말이 많으면 다툼이 많고 앞선 사람을 질투하면 친하지 못하니, 내 관점으로 보면 이 세 사람은 모두 덕을 그르치는 사람들일 뿐이다. 멀리 해도 오히려 화를 당할까 염려되는데 더구나 친하게 지내서야 되겠는가.”
나중에 모두 그가 말한 것과 같았다.注+② ≪부자傅子≫에 말하였다. “이때 하안何晏은 재주와 언변으로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하였고, 등양鄧颺은 교제하기를 좋아하여 도당들을 통합하는 것으로 항간에 명성이 높았으며, 하후현夏侯玄은 귀족의 자제로 젊어서부터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들 모두 부하傅嘏에게 교제를 청하였으나 부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하의 친구인 순찬荀粲은 식견이 높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었는데도 오히려 부하에게 교제를 권하였다고 한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이 에 의하면, 인석藺碩(부하傅蝦)은 선견지명이 있어 교제할 사람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늘 〈있는 자〉와 만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별전別傳〉에 ‘종회는 나이가 〈부하보다〉 적었으나, 부하는 종회가 현명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교제하였다.’ 하였으니, 태초太初(하후현夏侯玄)와 교제하는 것이 보다 그래도 낫지 않았겠는가.
유진옹劉辰翁:명언이다.


역주
역주1 傅嘏 : 209~255. 字는 兰石 또는 昭先이고, 北地郡 泥阳县 사람이다. 曹魏(三国) 후기의 重臣으로,河南尹․尙書 등을 지냈다.
역주2 荀粲 : 209~237. 魏(三國)의 학자이다. 字는 奉倩이고, 豫州 潁川郡 사람이다. 荀彧의 末子이다. 부친 순욱이나 형 荀顗가 儒家의 説을 중시한 반면 그는 道家의 説을 존중하여 “儒教의 経典은 聖人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洛陽에서 傅嘏・夏侯玄・裴徽 등과 친하게 교제하며 老子나 荘子의 説 등 論理学에 관한 담론을 하였다.(何劭 ≪荀粲傳≫)
역주3 秦王을……질타하였는데 : 戰國시대 秦昭王이 15개의 城으로 趙나라의 和氏璧과 바꾸자고 했을 때, 조나라 사람인 藺相如가 그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사신 갔다. 인상여는 진소왕이 성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알고는 화씨벽을 붙들고 기둥에 붙어 서서 “대왕께서 반드시 신을 몰아치시려 한다면 신의 머리와 이 옥구슬이 같이 기둥에 부딪쳐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大王必欲急臣 臣頭與璧俱碎於柱矣]”라고 질타했던 일을 말한다.(≪史記≫ 〈藺相如傳〉)
역주4 이른바……사람 : 원문은 “利口覆國之人”인데, ≪論語≫ 〈陽貨〉에 “〈잡색인〉 자줏빛이 〈원색인〉 붉은빛의 자리를 뺏는 것을 미워하며, 정나라의 〈음란한〉 음악이 〈바른〉 아악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미워하며, 말만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라는 말에 근거한다.
역주5 舍人 : 가까이 있는 친근한 사람을 말한다.(≪世說音釋≫)
역주6 叛臣과 교제하는 것 : 여기서 叛臣은 鍾會를 말한다. 종회는 曹魏(三国)의 大臣으로, 蜀漢을 멸망시킨 조위의 장군 중 하나이다. 촉에 들어간 뒤 姜維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軍中에서 죽었다.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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