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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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庾徴君 少給事縣庭이러니 郭林宗 見而拔之하여 勸遊學宮하니 遂爲諸生傭이라
後能講論이로되 自以卑第라하여 每處下坐한대 諸生 博士 皆就讐問이라 由是 學中 以下坐爲貴注+① 范曄後漢書曰 “庾乘, 字世遊, 潁川鄢陵人. 徵辟竝不起, 世號徵君.


26-2 【유징군庾徴君(유승庾乘)은 젊었을 때 의 청사에서 문지기 일을 했는데, 곽임종郭林宗(곽태郭泰)이 그를 보고는 빼내어 학궁學宮에 들어가라고 권유하니, 〈그는〉 마침내 제생諸生(수재秀才, 유생)의 피고용인이 되었다.
이후에 강론을 잘하게 되었으나, 스스로 출신이 비천하다고 여겨 매번 아랫자리에 앉았는데, 유생들과 박사들이 모두 〈그의 자리에〉 가서 토론하고 질문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학궁에서는 아랫자리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注+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유승열전庾乘列傳〉에 말하였다. “유승庾乘세유世遊로, 영천군潁川郡 언릉현鄢陵縣 사람이다. 〈벼슬을 하라고〉 조정에서 부르거나 고관대작이 불러도 모두 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징군徵君이라고 불렀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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