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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2)

세설신어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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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孫度 目邴原하되
所謂雲中白鶴이니 非燕雀之網으로 所能羅也注+① 魏書曰 “度, 字叔濟, 襄平人. 累遷冀州刺史遼東太守.” 邴原別傳曰 “原, 字根矩, 東管朱虛人. 少孤, 數歲時過書舍而泣, 師問曰 ‘童子何泣也?’ 原曰 ‘凡得學者, 有親也. 一則願其不孤, 二則羨其得學, 中心感傷, 故泣耳.’ 師惻然曰 ‘苟欲學, 不須資也.’ 於是就業, 長則博覽洽聞, 金玉其行. 知世將亂, 避地遼東, 公孫度厚禮之. 中國旣寧, 欲還鄕里, 爲度禁絶. 原密自治嚴, 謂部落曰 ‘移比近郡’, 以觀其意, 皆曰 ‘樂移’. 原舊有捕魚大船, 請村落, 皆令熟醉, 因夜去之. 數日度乃覺, 吏欲追之, 度曰 ‘邴君, 所謂雲中白鶴, 非鶉鷃之網所能羅也.’ 魏王辟祭酒, 累遷五官中郞長史.”라하다


15-5 공손탁公孫度병원邴原을 품평하였다.
“구름 속의 백학白鶴이니, 제비나 참새를 잡는 그물로는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注+①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병원전邴原傳〉에 말하였다. “공손탁公孫度숙제叔濟이고, 양평襄平 사람이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기주자사冀州刺史요동태수遼東太守가 되었다.”
병원별전邴原別傳〉에 말하였다. “병원邴原근구根矩이고, 동관東管 주허朱虛 사람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었다. 서너 살 때 서사書舍를 지나가다가 울자, 스승이 ‘동자는 어찌하여 우는가?’라고 물었다. 병원이 말하기를, ‘대개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부친이 있어서이다. 첫째는 그들이 부친을 여의지 않기를 바라서이고, 둘째는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이 부러워서 마음이 서글퍼져 울었을 뿐입니다.’ 하니, 스승이 측은하게 여겨 말하기를, ‘참으로 배우고 싶다면 돈을 낼 필요가 없다.’ 하였다. 이리하여 학업에 나아가게 되었고, 성장하여서는 두루 읽고 많이 들었으며 그 행실이 금과 옥처럼 빛났다.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아 요동遼東으로 피난하였는데, 공손탁公孫度가 후하게 예우해주었다. 중국中國이 안정되자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공손도가 못 가게 막았다. 병원은 몰래 스스로 부락部落에 말하기를, ‘조만간 가까운 으로 이사하겠다.’ 하고 그들의 뜻을 관찰하니 모두 ‘옮겨도 좋다.’라고 하였다. 병원은 전부터 고기를 잡는 큰 배를 가지고 있었는데, 촌락 사람들을 초빙하여 모두 술에 취하게 만들고는 밤을 틈타 떠났다. 며칠 뒤 공손도가 마침내 그 사실을 알았는데, 관리가 추격하려고 하자 공손도가 말하였다. ‘병군邴君은 구름 속의 백학白鶴이니 메추라기를 잡는 그물로는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위왕魏王(조조曹操)이 좨주祭酒로 초빙하였고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장사長史가 되었다.


역주
역주1 행장을 꾸려 놓고 : 원문은 ‘治嚴’이다. 漢代에 明帝(劉莊)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裝”이 “莊”과 同聲이므로 “嚴”으로 바꿔 썼는데, 후대에 그것을 연용하였다.
역주2 五官中郞長 : 後漢 建安 16년(211)에 천자가 魏공자 曹丕를 五官中郎將으로 삼고, 官屬을 갖추게 하고 丞相의 다음이 되게 하였으니, 그 지위가 魏國의 제후들보다 위였다.(≪三國志≫ 〈魏志 文帝紀〉)

세설신어보(2)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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