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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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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遵彦注+① 北史曰 “楊愔, 字遵彦, 弘農華陰人, 楊津子也. 小名秦王. 兒童時, 口若不能言, 而風度深敏. 六歲史書, 十一受詩易, 好左氏春秋. 仕至開府儀同三司․尙書右僕射. 典選時 以六十人으로 爲一甲이라 令其自敍하고 不省文簿하고 便次第呼之러니 嘗誤以盧士深爲士琛이라 士深 自言其名하니 遵彦
盧郎 朗潤하여 所以加玉注+② 三國典略曰 “東魏以楊愔典選, 愔令選人自敍, 不省文簿, 次第呼之. 嘗誤呼慕容爲長孫一人而已. 有選人魯漫漢, 自言微賤不蒙記. 愔曰 ‘卿前在元子思坊乘驢, 遙見我不下, 以方麴障面, 我何不識卿邪.’ 漫漢驚服.”이라하다
【頭註】
王云 “遵彦典選, 一言華袞, 因誤加賞, 便是士深之幸.”
一一作二.


5-12【양준언楊遵彦(양음楊愔)이注+① ≪북사北史≫ 〈양파전楊播傳〉에 말하였다. “양음楊愔준언遵彦이고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으로 양진楊津의 아들이다. 어릴 적 이름은 진왕秦王이다. 어린아이일 때에 입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행동거지와 자태는 묵직하고 장중하였다. 6세에 사서史書를 배웠고, 11세에 ≪시경詩經≫과 ≪역경易經≫을 배웠으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좋아하였다. 벼슬이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이르렀다.” 관리 선발을 담당했을 때에 60명의 사람을 하나의 단위로 묶었다. 양준언은 〈후보자에게〉 자신의 경력을 서술하게 하고 마치면 명부名簿를 보지도 않고 바로 차례대로 〈이름을〉 불렀다. 한번은 노사심盧士深노사침盧士琛으로 잘못 불렀다. 노사심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양준언이 말했다.
노랑盧郎이 밝고 윤기가 있기에 注+② ≪삼국전략三國典略≫에 말하였다. “동위東魏에서 양음楊愔에게 관리의 선발을 맡겼다. 양음은 선인選人(관리 후보자)에게 자신의 경력을 서술하게 하였는데, 명부名簿를 살펴보지도 않고 차례대로 불렀다. 한번은 모용慕容장손長孫이라고 잘못 불렀는데 〈잘못 부른 것은 이〉 한 사람뿐이었다. 노만한魯漫漢이라는 후보자가 있었는데 미천하여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자, 양음이 ‘은 전에 원자사元子思의 동네에서 나귀를 타다가 멀리서 나를 보고도 나귀에서 내리지 않고 으로 얼굴을 가렸으니, 내 어찌 경을 모르겠소?’라고 하였다. 노만한은 깜짝 놀라고 탄복하였다.”
두주頭註
왕세무王世懋양준언楊遵彦이 관리 선발을 맡았으니 〈그의〉 말 한마디가 처럼 〈귀중한데〉 실수로 인해 상을 주었으니, 이는 노사심盧士深의 행운이다.
◦ 어떤 판본에는 〈유효표劉孝標 ②에서 ‘일인이이一人而已’의〉 ‘’자가 ‘’자로 되어 있다.


역주
역주1 玉을 보탰소 : 罙에 氵을 보태지[深] 않고 玉을 보탰다[琛]는 것이다.
역주2 方麴 : 대나무로 짠 네모난 부채이다.
역주3 (擧)[學] : 저본에는 ‘擧’로 되어 있으나, 安永本과 ≪北史≫에 의거하여 ‘學’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華袞 : 고대 王公과 貴族들이 입던 화려한 예복이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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