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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도山司徒(
산도山濤)가 그간 거의 온갖 관원들을 두루 선발하였는데, 선발된 이 중에 잘못 뽑은 인재가 없었고 인물을 품평한 것이 모두 그의 말과 같았다. 오직
육량陸亮을 서용하라는 조서에 대해서는
공公의 뜻과 달라서 버티고 따르지 않았는데, 그 육량마저도 얼마 뒤 뇌물수수로 파면되었다.
注+① ≪진제공찬晉諸公贊≫에 말하였다. “육량陸亮은 자字가 장흥長興이고 하내河內 야왕野王 사람이며, 태상太常인 육예陸乂의 형이다. 성품이 고명高明하고 진솔하여 가충賈充이 가까이하고 우대하였다. 산도山濤가 좌복야左僕射가 되어 관리를 선발할 적에 자신의 행업行業은 가충과 다른 데다가 스스로 세조世祖(진晉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존중을 받는다고 여겨, 선발하는 일을 가충과 논의할 때 가충은 매번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다. 일 만들기 좋아하는 자가 가충에게 조언하기를, ‘심복에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제수하여 선발에 함께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의견이 달라 일이 원만하지 않을 때 산공山公을 불러 같이 선발하지 않고도 실제로 마음먹은 바를 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가충이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육량은 공평무사한 인물입니다.’라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산도는 육량이 장차 자기와 뜻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였고, 또 그가 사심私心을 가져 공정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였으므로 누차 ‘육량은 좌승상左丞相으로 삼을 만하고 관리 선발을 맡을 인재가 아닙니다.’라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그런데도 세조가 윤허하지 않자, 산도가 마침내 병을 칭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육량은 관직에 있을 때 과연 공정하지 못하여 일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