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處
는 年少時
에 兇彊俠氣
하여 爲鄕里所患
注+① 處別傳曰 “處少孤, 不治細行.”注+晉陽秋曰 “處, 輕果薄行, 州郡所棄.”하고 又義興
에 水中有蛟
하며 山中有邅跡
注+② 一作白額.虎
하여 竝皆暴犯百姓
하니 義興人
이 謂爲三橫
이라한대 而處尤劇
이라
或說處하되 殺虎靳蛟라하니 實冀三橫에 唯餘其一이라 處는 卽刺殺虎하고 又入水撃蛟한대
蛟或浮或沒
하여 行數十里
하니 處與之俱
하여 經三日三夜
라 鄕里皆謂已死
하여 更相慶
한대 竟殺蛟而出
에 聞里人相慶
하고 始知爲人情所患
하여 有自改意
注+③ 孔氏志怪曰 “義興有邪足虎, 溪渚長橋有蒼蛟, 竝大噉人. 郭西周, 時謂郡中三害.” 周卽處也.하고
乃
吳尋二陸
이라 平原不在
하여 正見淸河
하여 具以情告
하고 幷云
古人은 貴朝聞夕死하니 況君은 前途尙可요 且人은 患志之不立이니 亦何憂令名不彰邪잇가하다
處遂改勵
하여 終爲忠臣孝子
注+④ 晉陽秋曰 “處仕晉, 爲御史中丞, 多所 氐人齊萬年反, 乃令處距萬年, 伏波孫秀欲表處母老, 處曰 ‘忠孝之道, 何當得兩全?’ 乃進戰. 斬首萬計, 弦絶矢盡, 左右勸退, 處曰 ‘此是吾授命之日.’ 遂戰而沒.”라
25-1
주처周處는 젊었을 때 흉포하고 호탕한 기상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근심거리로 여겼고,
注+① 〈주처별전周處別傳〉에 말하였다. “주처周處는 어릴 때 부친을 여의어 세세한 예절을 배우지 못하였다.”注+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주처周處는 경솔하고 과감하며 행실이 나빠 주군州郡 사람들에게 버려졌다.” 또
의흥義興에는 강물 속에
교룡蛟龍이 있고 산속에
注+② 에는 〈전적邅跡이〉 백액白額[하얀 이마]으로 되어 있다. 호랑이가 있었는데, 모두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 의흥 사람들은 〈이들을〉
삼횡三橫(세가지 횡포한 것)이라 불렀는데 주처가 가장 심하였다.
어떤 이가 주처에게 호랑이를 죽이고 교룡을 베라고 부추겼는데, 실은 삼횡 중에 하나만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주처는 즉시 호랑이를 찔러 죽이고, 또 강물에 들어가 교룡을 공격하였다.
교룡이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면서 수십 리를 갔는데 주처도 교룡과 함께 가서 3일 밤낮을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주처가〉 이미 죽었다고 여겨 서로 축하하고 있었는데, 〈주처가〉 마침내 교룡을 죽이고 〈강에서〉 나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는 말을 듣고는 비로소 〈자신이〉 사람들의 근심거리였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잘못을 고치려는 마음을 품었다.
注+③ 공약孔約의 에 말하였다. “의흥義興에 절름발이 호랑이가 있고 장교長橋 아래의 강에 푸른 교룡이 있었는데, 모두 사람을 마구 잡아먹었다. 성곽 서쪽에 사는 주씨周氏와 아울러 당시에 ‘군郡에 있는 세 가지 해로움’이라고 불렀다.” 주씨는 바로 주처周處이다.
마침내 오吳 지역으로 들어가 두 명의 육씨(육기陸機와 육운陸雲)를 방문했는데, 육평원陸平原(육기)이 부재중이어서 바로 육청하陸淸河(육운)를 만나 실정을 자세히 아뢰고, 덧붙여 말하였다.
“스스로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만,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옛 사람은
는 말을 귀중하게 여겼소. 하물며 그대는 앞길이 아직 창창하고, 게다가 사람에 대해서는 뜻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뿐이니, 도대체 어찌 훌륭한 명성이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하겠소.”
주처는 마침내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여 결국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었다.
注+④ 손성孫盛의 ≪진양추晉陽秋≫에 말하였다. “주처周處는 진晉나라에서 벼슬하여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는데, 탄핵한 사람이 많았다. 주처에게 제만년을 막으라고 명했는데, 복파장군伏波將軍 손수孫秀가 주처의 모친이 연로하여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표문表文을 올리려고 했더니, 주처가 ‘충성과 효성, 이 두 가지 도리를 어찌 〈동시에〉 온전하게 할 수 있겠소.’라고 하고는 곧바로 출전하여 싸웠다. 〈반란군의〉 머리를 벤 것이 1만 단위로 셀 정도였으나, 활시위가 부러지고 화살이 바닥이 났다. 좌우의 측근이 퇴각을 권하자, 주처가 ‘오늘은 내가 목숨을 바치는 날이다.’ 하고는 마침내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