顧悅
은 與簡文
으로 同年
이나 而髮蚤白
注+① 中興書曰 “悅, 字君叔, 晉陵人. 初爲殷浩揚州別駕. 浩卒, 上疏理浩. 或諫以浩爲太宗所廢, 必不依許, 悅固爭之, 浩果得申, 物論稱之. 後至尙書左丞.”이라 簡文曰
蒲柳之姿
는 望秋而落
하고 松栢之質
은 經霜彌茂
注+② 顧凱之爲父傳曰 “君以直道陵遲於世. 入見王, 王髮無二毛, 而君已斑白. 問君年, 乃曰 ‘卿何偏蚤白.’ 君曰 ‘松栢之姿, 經霜猶茂, 臣蒲柳之質, 望秋先零. 受命之異也.’ 王稱善久之.”라하다
4-39
은
진晉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일찍 세었다.
注+① ≪중흥서中興書≫에 말하였다. “고열顧悅은 자字가 군숙君叔이고 진릉晉陵 사람이다. 처음에 은호殷浩 〈밑에서〉 양주별가揚州別駕가 되었다. 혹자는 은호가 태종太宗(진晉 간문제簡文帝)에게 유폐당하여 틀림없이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하였으나, 고열은 한사코 간쟁하였으니 은호는 과연 신원되었고 여론은 이를 칭송하였다. 나중에 벼슬이 상서좌승尙書左丞에 이르렀다.” 간문제가 말하였다.
“경은 어이하여 〈머리카락이〉 먼저 세었는가?”
“갯버들의 자태는 가을이 다가오면 〈잎을 미리〉 떨구고,
송백松柏의 자질은 서리를 맞고 더욱 무성해집니다.”
注+② 고개지顧凱之(고개지顧愷之)가 부친인 〈고열顧悅을〉 위해 전傳을 지었다. “부군府君은 정도正道를 걸어 출세가 순탄치 못하였다. 조정에 들어가 왕王(간문제簡文帝)을 알현하자, 왕은 머리카락에 새치가 없었는데 부군은 이미 반백斑白이었다. 〈왕이〉 부군의 나이를 묻고는 이에 ‘경卿은 어찌하여 유독 일찍 머리가 세었소?”라고 하였다. 부군이 ‘송백松栢의 자태는 서리를 맞아도 오히려 무성하나, 신은 갯버들 같은 자질이라 가을이 다가오자 먼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받은 명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한참을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