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大夫
가 三日不讀書
면 則理義
가 不交於胷中
하여 便覺面貌可憎
하고 語言無味
注+① 山谷年譜曰 “公諱, 庭堅, 字魯直, 分寧人. 治平丙午, 赴鄕舉, 詩題出‘野無遺賢’. 廬陵李詢讀先生詩中兩句云 ‘渭水空藏月, 傅巖深鎖烟.’ 擊節稱賞云 ‘此人不惟文理冠場, 異日當以詩名擅四海.’ 遂膺首選, 歷官著作佐郞․兼史館.”라하다
5-23【보補】황태사黃太史(황정견黃庭堅)가 말했다.
“
사대부士大夫가 사흘 동안 독서를 하지 않으면
이理와
의義가 가슴속에서
교류交流하지 않아 바로 모습이
가증可憎스럽고 말에 별다른 맛이 없는 듯 느껴진다.”
注+① ≪산곡연보山谷年譜≫에 말하였다. “공公의 휘諱는 정견庭堅이고 자字는 노직魯直으로 분녕分寧 사람이다. 치평治平 병오년丙午年(1066)에 향시鄕試에 응시했는데 시제詩題로 ‘재야에 남겨진 현자賢者가 없다.[야무유현野無遺賢]’가 나왔다. 여릉廬陵의 이순李詢이 선생先生의 시 중 [위수공장월渭水空藏月 부암심쇄연傅巖深鎖烟]’라는 두 구절을 읽고는 무릎을 치며 ‘이 사람은 문리가 응시생 가운데 으뜸일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시명詩名을 사해四海에 떨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수석으로 뽑혔으며, 저작좌랑著作佐郞과 겸사관兼史館을 거쳤다.”황정견黃庭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