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文帝時
에 到彦之北伐
하얀 甲兵資實甚盛
注+① 南史曰 “到彦之, 字道豫, 彭城武原人, 楚大夫屈到後也. 爲豫州刺史, 鎮歷陽, 元嘉七年侵魏回軍焚舟, 歩至彭城.”이러니 及敗還
하얀 委棄蕩盡
하여 武庫一空
이라
一日
에 上與群臣宴
할새 有
降人在列
이어늘 上問庫部郎顧琛
호대
上既問而悔
라가 得琛對甚喜
注+② 沈約宋書曰 “顧琛, 字弘瑋, 吴郡吴人. 晉司空和之曽孫, 祖履之․父惔, 竝爲司徒左西曹掾. 琛謹確, 不尚浮華, 起家州從事․駙馬都尉, 累遷尚書庫部郎卒.”라
21-7 【
보補】
송문제宋文帝때
도언지到彦之가 북벌을 할 적에는 무기와 군수물자가 매우 성대하였는데,
注+① ≪남사南史≫에 말하였다. “도언지到彦之는 자字가 도예道豫이고 팽성彭城 무원武原 사람으로, 초楚나라 대부大夫 굴도屈到의 후손이다. 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어 역양歷陽에 주둔하였는데, 원가元嘉 7년(430)에 위魏나라를 침입하였다가 〈패하여〉 회군할 때 배를 불태우고 걸어서 팽성彭城에 도착하였다.” 패배하고 돌아올 때는 내버리고 탕진하여
무고武庫가 텅 비게 되었다.
어느 날 주상이 신하들과 연회를 할 때 항복해 온 위魏나라 사람이 반열에 있었다. 주상이 고부랑庫部郎 고침顧琛에게 물었다.
주상이 묻고 나서 아차 싶었다가, 고침의 답변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注+② 심약沈約의 ≪송서宋書≫에 말하였다. “고침顧琛은 자字가 홍위弘瑋이고, 오군吴郡 오吴 사람이다. 진晉나라 사공司空 고화顧和의 증손이고 조부 고이지顧履之와 부친 고담顧惔은 모두 사도司徒의 좌서조연左西曹掾을 지냈다. 고침은 근면하고 정확하였으며, 허황되고 화려한 것은 숭상하지 않았다. 주종사州從事와 부마도위駙馬都尉로 벼슬을 시작하여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상서고부랑尚書庫部郎으로 있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