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세설신어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張延符 少不拘檢하고 肆意畋遊이라 父思曼 請假還吳하여 始入西郭한대 延符正獵하여 左手臂鷹하고 右手牽犬이러니
遙望見思曼하고 乃放鷹紲犬하고 向舟而拜 思曼曰
一身兩役 無乃勞乎아하니
延符跪對曰
充聞컨대 三十而立이라하니 今二十九矣니이다 請至來歲 終身折節하리이다하니
思曼曰
過而能改 乃顔子矣리라하다
明年 番然易操하여 尋師就學하고 博覽古籍하여 鬱爲名士注+① 劉璠梁典曰 “張充, 字延符. 父緒, 官特進, 有重名. 充該通老易, 能淸言, 與從叔稷, 俱有令譽. 歷殿中郎, 終吳郡太守.”


25-4 【장연부張延符(장충張充)는 젊었을 때 품행을 단속하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냥하면서 놀았다. 부친 장사만張思曼(장서張緖)이 휴가를 요청하여 오군吳郡으로 돌아와 서쪽 성곽에 막 들어왔는데, 장연부가 한창 사냥하느라 왼손으로는 사냥매를 어깨에 올려두고 오른손으로는 사냥개를 끌고 있었다.
멀리 장사만을 바라보고는 곧장 사냥매를 놓아주고 사냥개를 묶어 놓은 뒤에 〈부친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절을 하였다. 장사만이 말하였다.
“몸은 하나인데 두 가지 일을 하니 힘들지 않겠느냐.”
장연부가 무릎을 꿇고 대답하였다.
“제가 들으니, 〈저는〉 현재 29세이니, 청컨대 내년이 되면 종신토록 평소의 태도를 바꾸하겠습니다.”
장사만이 말하였다.
다음 해에 〈장연부는〉 태도를 확 바꾸어 스승을 찾아가 배우고 옛 서적을 널리 섭렵하여 훌륭하게 명사가 되었다.注+유번劉璠의 ≪양전梁典≫에 말하였다. “장충張充연부延符이다. 부친 장서張緒특진관特進官을 역임하고 큰 명망이 있었다. 장충은 ≪노자老子≫와 ≪주역周易≫에 널리 정통하고 청담淸談에 뛰어났으며, 5촌 숙부 과 함께 모두 훌륭한 명예가 있었다. 전중랑殿中郎을 역임하고 오군태수吳郡太守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역주
역주1 30세에……했습니다 : 孔子가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지킴이 견고해졌으며, 40세에 의혹되지 않았고, 50세에 천명을 알았으며, 60세에 모든 일을 들으면 알았고, 70세에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서 하여 절로 법도를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하였다.(≪論語≫ 〈爲政〉)
역주2 잘못을……것이다 : 이전의 잘못을 확실히 고치면 顔回의 ‘不貳過’와 같게 된다는 뜻이다. 魯나라 哀公이 孔子에게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 묻자, 공자가 “안회라는 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라고 하였다.(≪論語≫ 〈雍也〉)
역주3 張稷 : 451~513. 吳郡 吳縣 사람으로, 字는 公喬이며, 南朝 梁의 개국공신이다. 南朝 齊 武帝 永明 연간(483~493)에 黃門侍郞․輔國將軍․南兖州刺史를 역임하고, 東昏侯(蕭寶卷) 永元 연간(499~501) 말년에 侍中 겸 衛尉가 되어 궁성을 지키다가 동혼후를 살해하였다. 양 무제가 즉위한 뒤에 江安縣侯에 봉해지고 領軍將軍․揚州大中正에 임명되며, 여러 관직을 거쳐 尙書左僕射(상서좌복야)가 되었다. 天監 12년(513)에 靑州와 冀州 二州刺史가 되었는데 直閣將軍 徐玄明에게 피살되었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