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孝
가 以父田禾將軍
注+① 後漢書註曰 “王莽時, 置田禾將軍, 屯田北邊.”으로 任爲郎
한대 每告歸
에 常白衣歩擔
이라 嘗從長安還
에 欲止郵亭
하니 亭長
이 先時聞孝當過
하고 掃灑待之
라 孝既至
에 不
名
하니 長不肯內
하고 因問曰
於是
에 遂去
注+② 范曄後漢書曰 “趙孝字長平, 沛國蘄人. 州郡辟召, 進退必以禮. 顯宗聞其行, 詔拜諫議大夫, 遷衛尉. 弟禮爲御史中丞, 禮恭謙行已, 類於孝. 帝嘉其兄弟篤行, 詔禮十日一就衛尉府, 大官送供具, 令相對盡歡.”하다
1-2【
보補】
조효趙孝는
휴가를 받아 돌아갈 때마다 항상
를 입고 짐을 멘 채 걸어서 갔다. 한번은
장안長安에서 돌아갈 적에
우정郵亭(
역관驛館)에 묵으려고 하였는데,
정장亭長이 조효가 지나갈 것이라는 소식을 미리 듣고 청소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효가 도착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자 정장이 그를 〈우정에〉 들이려 하지 않고 물었다.
조보趙普
“전화장군의 아들이 장안에서 올 것이라 들었는데 어느 때나 도착하겠는가?”
그리고는 마침내 가버렸다.
注+②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조효전趙孝傳〉에 말하였다. “조효趙孝는 자가 장평長平이고 패국沛國 기현蘄縣 사람이다. 주군州郡이 그를 초빙하니 나아가고 물러남이 반드시 예에 맞았다. 이 그의 행실을 듣고 조서를 내려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하였다. 〈조효가〉 위위衛尉로 옮겼을 때 아우 조예趙禮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는데 조례의 공경하고 겸손한 행실이 조효와 같았다. 황제가 그들 형제의 독실한 행실을 가상하게 여겨 조서를 내려 조례를 10일에 한 번씩 위위부衛尉府에 보내고 에게 술과 음식을 보내게 하여 〈형제가〉 서로 만나 한껏 즐기게 하였다.”
注
◦ 〈부백명不白名의〉 ‘백白’이 어떤 본에 ‘자自’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