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百藥七歲時에 中書舍人陸乂가 嘗過其父德林러니 有讀徐陵文者云 刈瑯琊之稻라하니 坐客竝不識其事어늘 百藥進曰
傳稱鄅人藉稻
注+① 左傳昭公十八年.라하야늘 注云 鄅國在瑯琊開陽縣
이라하니
22-26 【
보補】
이 7살 때 한번은
중서사인中書舍人 육예陸乂가 그의 부친
이덕림李德林을 찾아왔을 때였다.
의 글을 읽는 자가 “
낭야瑯琊의 벼를 베다.”라는 구절을 말하자, 좌중에 있던 빈객들 모두 그 일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이백약이 나아와 말하였다.
“≪춘추좌씨전≫에
라고 하였는데,
注+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8년조에 있다. 그
주注에 ‘
우국鄅國은
낭야瑯琊 개양현開陽縣에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