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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3)

세설신어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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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百藥七歲時 中書舍人陸乂 嘗過其父德林러니 有讀徐陵文者云 刈瑯琊之稻라하니 坐客竝不識其事어늘 百藥進曰
傳稱鄅人藉稻注+① 左傳昭公十八年.라하야늘 注云 鄅國在瑯琊開陽縣이라하니
人皆服其機頴이라


22-26 【이 7살 때 한번은 중서사인中書舍人 육예陸乂가 그의 부친 이덕림李德林을 찾아왔을 때였다. 의 글을 읽는 자가 “낭야瑯琊의 벼를 베다.”라는 구절을 말하자, 좌중에 있던 빈객들 모두 그 일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이백약이 나아와 말하였다.
“≪춘추좌씨전≫에 라고 하였는데,注+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18년조에 있다.에 ‘우국鄅國낭야瑯琊 개양현開陽縣에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의 명민함에 탄복하였다.


역주
역주1 李百药 : 564~648. 字는 重规이고, 隋․唐나라 때의 大臣․史学家․诗人이다. 隋나라의 内史令 李德林의 아들이다. 그는 어렸을 때 잔병이 많아 祖母가 ‘百藥’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인품이 강직하고 直言을 잘 하였으며, 저술로 ≪封建论≫과 ≪北齐书≫가 있다.
역주2 徐陵 : 507~583. 字는 孝穆이고, 东海郡 郯县(지금의 山东 郯城) 사람이다. 东海徐氏 출신으로 南朝의 저명한 诗人․文学家이다. 어려서부터 詩文으로 이름났고 梁武帝(萧衍) 때 宮體诗로 庾信과 함께 명성이 높아 ‘徐庾’로 병칭되었다. 시호는 孝穆이다. 현재 ≪徐孝穆集≫ 6권과 ≪玉臺新咏≫10권이 전한다.
역주3 鄅人이……巡行하였다 : 원문은 ‘鄅人藉稻’인데, ≪春秋左氏傳≫ 昭公 18년 注에 “鄅는 妘姓國이다. 그 임금이 직접 藉田의 벼 심는 곳으로 나간 것이니, 이는 그곳을 巡行한 것이다.[鄅 妘姓國也 其君自出藉稻 蓋履行之]”라고 하였다.

세설신어보(3)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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