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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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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孟萬年 好飲하여 喜酣暢注+① 孟嘉別傳曰 “嘉, 字萬年, 江夏鄳人. 曾祖父宗, 吳司空, 祖父, 晉廬陵太守. 宗葬武昌, 子孫家焉. 嘉少以淸操知名. 庾亮領江州, 辟嘉部廬陵從事. , 亮引問風俗得失, 對曰 ‘待還當問從事吏.’ 亮擧麈尾掩口而笑, 語弟翼曰 ‘孟嘉故是盛德人.’ 轉勸學從事.”이러니 桓宣武 嘗問
酒有何好완대 而卿嗜之오하니
答曰
但未知酒中趣耳注+② 桓溫別傳曰 “溫, 字元子, 譙國龍亢人, 漢五更桓榮後也. 父彛, 有識鑑. 溫少有豪邁風氣, 爲溫嶠所知. 累遷瑯琊內史, 進征西大將軍, 鎭西夏. 時逆胡未誅, 餘燼假息, 溫親勒郡卒, 建旗致討, 淸蕩伊․洛, 展敬園陵. 薨, 謚宣武侯.”니이다하다


4-25 맹만년孟萬年(맹가孟嘉)은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통음痛飮하기를 즐겼다.注+① ≪맹가별전孟嘉別傳≫에 말하였다. “맹가孟嘉만년萬年이고 강하江夏 사람이다. 증조부인 맹종孟宗나라 사공司空이고, 조부 맹읍孟揖나라 여릉태수廬陵太守였다. 맹종이 무창武昌에 묻혀 자손들이 그곳에 터를 잡았다. 맹가는 어려서부터 맑은 지조로 이름이 났다. 유량庾亮강주江州를 다스리면서 맹가를 초빙하여 여릉종사廬陵從事를 맡겼다. 하군下郡(여릉)에서 돌아오니, 유량이 불러서 풍속風俗득실得失에 관해 물어보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종사리從事吏에게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유량이 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동생 유익庾翼에게 ‘맹가가 이래서 덕이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하고는 권학종사勸學從事로 전임시켰다.” 환선무桓宣武(환온桓溫)가 한번은 물어보았다.
“술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기에 경께서는 좋아하십니까?”
맹만년이 대답하였다.
께서는 단지 아직 술 속의 즐거움을 모르실 따름입니다.”注+② ≪환온별전桓溫別傳≫에 말하였다 “환온桓溫원자元子이고 초국譙國 용항龍亢 사람으로 나라 이었던 환영桓榮의 후손이다. 부친 환이桓彛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환온은 어려서부터 호매豪邁풍기風氣가 있어서 온교溫嶠의 인정을 받았다. 여러 벼슬을 거쳐 낭야내사瑯琊內史가 되었으며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으로 승진하여 서하西夏진수鎭守하였다. 당시 반기를 들었던 오랑캐가 아직 토벌되지 않아 남은 불씨가 꺼지지 않았기에 환온은 직접 의 군졸들을 이끌고 깃발을 세우고서 토벌하여 이수伊水낙수洛水 지역을 깨끗이 소탕하고 여러 원릉園陵에 참배하였다. 죽은 뒤 선무후宣武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역주
역주1 【補】 : 저본에는 ‘補’가 없으나, 이 일화는 ≪世說新語≫가 아닌 ≪何氏語林≫에 있으므로 ‘補’를 보충하였다.
역주2 麈尾 : 옛사람들이 한담을 나눌 때 벌레를 쫓거나 먼지를 털 때 쓰던 도구이다.
역주3 五更 : 고대 중국에서 나이가 들어 벼슬을 그만둔 덕망 있는 이들을 대우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 중의 하나로, 천자가 父兄의 예로 봉양하여 천하에 孝悌의 덕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역주4 (楫)[揖] : 저본에는 ‘楫’으로 되어 있으나, 宋本을 비롯한 제본의 ≪世說新語≫에 의거하여 ‘揖’으로 바로잡았다. 이 주석은 ≪세설신어≫ 〈識鑑〉의 ‘武昌孟嘉’ 항목의 劉孝標 注에 실려 있다.
역주5 下都還 : ≪晉書≫ 〈孟嘉傳〉에는 ‘下’자가 없이 ‘還都’로 되어 있다. ≪陶淵明集≫, ≪古今事文類聚≫ 등에는 ‘下郡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문맥상 근리하여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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