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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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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劉凝之 隱居荊州할새 適歲儉한대 衡陽王注+① 宋書曰 “衡陽王義季, 幼而夷簡, 無鄙近之累, 特爲太祖所愛.” 餉錢十萬이라 凝之大喜하여 持錢至市門하여 見有飢色者 悉分與之하여 俄頃都盡注+② 酈道元水經註曰 “劉凝之, 字志安. 兄盛公, 高尙不仕. 凝之慕老萊․嚴子陵之爲人, 立屋江湖, 非力不食. 妻梁州刺史郭全女, 亦能安貧, 元嘉中, 夫妻隱於衡山.” 南史曰 “凝之, 字隱安.”하다


2-5【유응지劉凝之형주荊州에 은거할 때 흉년을 만났는데 형양왕衡陽王(유의계劉義季)이注+① ≪송서宋書≫ 〈무삼왕전武三王傳〉에 “형양왕衡陽王 유의계劉義季는 어려서부터 대범하였고 비근한 잘못이 없어 특별히 태조太祖(유유劉裕)의 아낌을 받았다.” 하였다. 10만 전을 보내주었다. 유응지가 크게 기뻐하여 돈을 가지고 시문市門에 가서 굶주린 기색이 있는 자를 보면 다 나누어주어 얼마 안 가 모두 써버렸다.注+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註≫ 〈강수江水〉에 말하였다. “유응지劉凝之지안志安이다. 유성공劉盛公은 고상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유응지는 노래자老萊子엄자릉嚴子陵(엄광嚴光)의 사람됨을 흠모하였으며 강호江湖에 집을 짓고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의 처는 양주자사梁州刺史 곽전郭全의 딸이었는데, 그 역시 가난을 편안히 여길 수 있었으며, 원가元嘉(424∼453) 중에 부부가 형산衡山에 은거하였다.”
남사南史≫ 〈은일隱逸 유응지劉凝之 에 “유응지는 은안隱安이다.” 하였다.
유응지劉凝之유응지劉凝之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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