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恭
이 始與王建武
注+① 晉安帝紀曰 “忱初作荊州刺史, 後爲建武將軍.”甚有情
이러니 後遇袁悅
注+② 別見.之間
하여 遂致疑隟
注+③ 晉安帝紀曰 “初, 忱與族子恭少相善, 齊聲見稱. 及竝登朝, 俱爲主․相所待. 內外始有不咸之論, 恭獨深憂之, 乃告忱曰 ‘悠悠之論, 頗有異同. 當由驃騎簡於朝覲故也. 將無從容切言之耶? 若主相諧睦, 吾徒得勁力明時, 復何憂哉?’ 忱以爲然, 而慮弗見令, 乃令袁悅具言之. 悅每欲間恭, 乃於王坐責讓恭曰 ‘卿何妄生同異, 疑誤朝野?’ 其言切厲. 恭惋悵, 謂忱爲搆己也. 忱雖心不負恭, 而無以自亮. 於是情好大離, 而怨隟成矣.”이라 然
이나 每至興會
면 故有相思
라
時恭嘗行散하여 至京口射堂하니 于時清露晨流하고 新桐初引이라 恭目之曰
16-21
왕공王恭은 처음에
왕건무王建武(
왕침王忱)와
注+① 에 말하였다. “왕침王忱은 처음에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고 나중에 건무장군建武將軍이 되었다.” 정이 돈독했는데 나중에
원열袁悅의
注+② 〈원열袁悅은〉 따로 보인다. 이간질 때문에 마침내 의심하고 사이가 벌어졌다.
注+③ ≪진안제기晉安帝紀≫에 말하였다. “당초 왕침王忱과 조카뻘되는 왕공王恭은 어려서부터 서로 사이가 좋았으며 사람들에게 나란히 칭송을 받았다. 함께 조정에 나아가서는 둘 모두 천자와 재상의 신임을 받았다. 안팎에서 〈천자와 재상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왕공 혼자 이를 심하게 걱정하여 왕침에게 ‘떠도는 이야기에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표기장군驃騎將軍(사마도자司馬道子)이 조근朝覲할 때 소홀히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차 조용히 직언하지 않으시렵니까? 만약 천자와 재상이 화목하여 우리들이 밝은 시대에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하였다. 왕침은 옳다고 생각했으나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원열袁悅에게 상세하게 말하도록 하였다. 원열은 매번 왕공을 이간질하고자 하여 곧바로 회계왕會稽王(사마도자)이 있는 자리에서 왕공을 꾸짖으며 ‘그대는 어찌하여 멋대로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 조야朝野에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가?’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몹시 매서웠다. 왕공은 다만 억울해하며 왕침이 자신을 모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침은 비록 마음으로 왕공을 저버리지 않았으나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두 사람의〉 좋은 감정은 크게 멀어지고 원망의 골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매번 감흥이 일어날 때면 그리워하였다.
한번은 왕공이
경구京口의
에 이르렀다. 그때 맑은 이슬이 아침 햇빛을 받으며 떨어지고 새 오동잎이 막 올라와 있었다. 왕공이 이를 보고는 말했다.
注
◦ 유신옹劉辰翁:유명한 사람들은 자연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注
◦ 왕세무王世懋:아름다운 문구가 마치 부賦와 같다.
注
◦ 유진옹劉辰翁:〈이슬과 오동나무에서 보이는〉 사물의 형상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정신을 생각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