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3【보補】북쪽의 사신 이해李諧가 남쪽으로 오자注+① ≪북사北史≫ 〈이해전李諧傳〉에 말하였다. “이해李諧는 자字가 건화虔和이다. 부친 이평李平은 상서복야尙書僕射였다. 이해는 어려서부터 풍채風采가 좋아서 조군趙郡이소李搔가 한번은 그를 보고 ‘영군領軍의 문하門下에서 신인神人 한 명을 보았다.’라고 하였다. 팽성후彭城侯(조부 이억李嶷)의 작위를 이어받았으며, 중서시랑中書侍郞을 거쳤다. 천평天平 연간(534~537) 말에 동위東魏가 양梁나라와 화친하고자 이해를 사신으로 보냈는데, 양梁무제武帝가 좌우의 사람들에게 ‘경들은 일찍이 북쪽에 인물이 전혀 없다고 말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하였다.”양梁무제武帝(소연蕭衍)가 그와 함께 유람하다가 방생放生하는 곳에 이르렀다. 황제가 물었다.
“그쪽 나라에서도 방생합니까?”
이해가 답하였다.
“잡지도 않고 방생하지도 않습니다.”
황제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注+② ≪군국지郡國志≫에 말하였다. “윤주潤州의 장명주長命洲는 양梁무제武帝가 방생放生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