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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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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蘇長公 卜居陽羡하여 以五百緡으로 買一宅하다 將入居할새 偶夜行이라가 聞老婦人哭極哀 公問嫗
何爲哀傷如是오하니
嫗言
舊居相傳百年이러니 一旦訣別하여 所以泣也라하다
問其居所在한대 正五百緡買者하니 卽取屋券焚之하고 不索其值하다 遂還毘陵하고 不復買地注+① 東都事略曰 “蘇軾, 字子瞻, 眉州眉山人. 生十歲而父洵宦學四方, 母程氏授以書, 比冠, 學通經史, 屬文日數千言. 中進土乙科, 英宗朝直史館, 熙寧中謫黃州團練. 哲宗召爲翰林學士. 紹聖初, 御史論軾譏斥先朝, 落職惠州安置.”하다
【頭註】
李云 “眞.”


2-23【소장공蘇長公(소식蘇軾)이 양이陽羡에 자리 잡고 살려고 500으로 집 한 채를 샀다. 막 들어가 살려 할 때 밤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노부인이 매우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들었다. 공이 노파에게 물었다.
소식蘇軾소식蘇軾
“어찌하여 이렇게 애통하게 우십니까?”
노파가 말하였다.
“대대로 100년간 전해오던 고택故宅을 하루아침에 결별하게 되었기에 웁니다.”
그 집의 위치를 물으니 바로 그가 500민에 산 집이었다. 즉시 집문서를 가져다 불태우고 그 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마침내 비릉毘陵으로 돌아가 다시는 땅을 사지 않았다.注+에 말하였다. “소식蘇軾자첨子瞻이고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이다. 태어나 10세가 되도록 부친 소순蘇洵은 사방으로 다니며 벼슬살이하면서 공부하였고 모친 정씨程氏가 글을 가르쳤다. 관례冠禮를 치를 때쯤 되자 학문이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문장을 하루에 수천 을 지을 수 있었다. 진토進土을과乙科로 합격하여 영종英宗사관史館에 근무하였고, 희령熙寧(1068∼1077) 연간에 황주단련부사黃州團練副使로 좌천되었는데, 철종哲宗이 불러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삼았다. 소성紹聖(1094∼1098) 초에, 소식이 선왕先王을 비난했다는 어사御史의 논핵으로 인하여 파직되어 혜주惠州에 안치되었다.”
두주頭註
이지李贄:진실하다.


역주
역주1 東都事略 : 宋나라 王偁이 北宋의 역사를 찬술한 紀傳體史書이다. 왕칭은 字가 季平이고 眉州 사람인데, 부친이 實錄修撰官이어서 家學을 이어 받아 이 책을 편찬하였다. 本紀 12, 世家 5, 列傳 105, 附録 8, 총 130권으로 구성되었다. 일을 기술한 것이 간결하고 해박하며, 의론이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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